|
한국은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호주와 일본에 2연패를 당해 B조 최하위로 떨어졌다. 같은 2패를 기록한 중국에 팀 실점에서 뒤져 꼴찌로 내려간 상태다. 아직 탈락이 최종 확정은 아니다. 하지만 8강 진출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희박하다.
한국은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11일 휴식을 취했다. 미국 애리조나 투손 전지훈련부터 워낙 강행군을 이어온 탓에 특별한 훈련 일정을 잡지 않았다.
체코와 조별리그 3차전은 12일 정오에 열린다. 대표팀은 대회를 앞두고 호주, 일본전에 모든 포커스를 맞췄다. 체코, 중국전은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은 경기력이 기대 이하다. 컨디션이 최악이다. 반면 WBC에 처음 출전한 체코는 생각보다 당하다. 중국과 경기에서 무서운 뒷심을 발휘해 8-5 역전승을 거뒀다. 자국 야구 역사상 가장 귀중한 승리였다.
공교롭게도 체코의 승리를 이끈 역전 3점 홈런은 아버지의 나라 중국 대표팀에 합류한 주권(KT)에서 빼앗은 것이었다. KBO리그에서 홀드 왕을 차지할 만큼 정상급 구원투수인 주권을 상대로 홈런을 때린다면 한국 투수 누구라도 공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체코는 대회 전부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선수들 대부분 낮에는 본업을 하면서 퇴근 후에 야구 연습을 하고 자국 아마추어 리그에서 뛰고 있다. 주장이자 지명타자인 페트르 지마는 기업 재무분석가이고 중견수 아르노슈트 두보비는 고등학교 지리 교사이다. 유격수이자 구원투수인 마르틴 슈네이데르는 소방관으로 일한다.
한국, 일본 같이 야구가 생업인 프로선수는 거의 없다. 미국 국적이지만 작년 1월 체코 국적을 취득한 에릭 소가드가 체코 대표팀의 유일한 메이저리그 출신이다.
포수인 마르틴 체르벤카와 투수 마렉 미나리크 정도가 미국프로야구 마이너리그 경험이 있다. 체르벤카는 2020년과 2021년 트리플A까지 올라갔다. 미나리크는 2014년과 2015년 싱글A와 루키리그에서 뛴 것이 전부다. 이들 역시 현재는 회사 영업사원과 부동산 중개업자로 일하고 있다. 체코 대표팀을 이끄는 ‘체코 야구의 아버지’ 파벨 하딤 감독은 원래 지역에서 유명한 신경정신과 전문의다.
이들은 야구로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열정만큼은 어느 팀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중국전에서 드러난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야구에 대한 세련됨이나 정교함은 다소 떨어졌지만 기본기나 파워는 수준급이었다. 몇몇 투수들은 빠른공 구속이 150km에 육박하기도 했다.
더 큰 걱정은 한국 팀 마운드다. 한국은 일본전에서 10명의 투수를 내고도 13실점이나 내줄 만큼 난타를 당했다. 콜드게임 패배를 박기 위해 애초 체코전 선발이 유력했던 박세웅(롯데)까지 마지막에 투입했다. 박세웅은 1⅓이닝을 던지면서 무실점으로 일본 타자를 막았다.
물론 박세웅이 체코전에 나올 수도 있다. 일본전에서 11개밖에 공을 던지지 않았고 하루 휴식도 있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선발 등판을 준비하는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설령 박세웅이 나와 초반을 잘 막아준다고 해도 그다음이 문제다. 호주, 일본전에서 나타난 한국 투수들의 컨디션은 전체적으로 최악이다. 스트라이크를 넣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강철 감독 입장에선 투수들을 어떻게 기용할지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다.
적게는 수억원, 많게는 수십억원씩 연봉을 받는 한국 야구대표팀이 ‘투잡’ 선수들로 이뤄진 체코를 걱정하는 현실 자체가 비참하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경기는 최선을 다해 이겨야 한다. 상대가 체코건 중국이건 이젠 매 경기 총력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