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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에게 ‘트롯’은 가족간 소통의 매개체가 됐다. 지난 4월 ‘갱년기인가봐’를 내고 트롯 가수로 활동에 나선 게 부모님과 사이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갱년기인가봐’는 제목 그대로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노래다. 신나는 분위기의 세미 트롯이다. 정윤희는 “누구나 나이가 들면 갱년기를 겪게 된다”며 “그 시기를 보내시는 분들이 잘 극복할 수 있도록 힐링의 기운을 전해주는 노래”라고 설명했다. 그런 노래의 의미가 자신의 부모님에게까지 잘 전달이 된 셈이다.
트롯 가수 변신에 앞서 오랜 기간 뮤지컬 배우로 활동을 했지만 부모님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부모님의 반대가 적지 않았다. ‘기생 팔자가 되려고 하느냐’ ‘딴따라의 길을 가려고 하느냐’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고교 때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뽐내기 코너’에 친구와 함께 듀엣을 구성해 나갔고 주장원, 월장원, 기장원을 차례로 휨쓸면서 자신의 장기에 눈을 뜬 터였다. 부모님에게 처음 반발을 했다. 정윤희는 “원하는 길을 꼭 가야겠다는 용기와 무모함이 있었던 것 같다”며 “1개월 정도 싸워서 허락을 얻어냈다”고 말했다.
서울예대를 졸업하고 10년 넘게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하며 주연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탐탁치 않아했다. 지난해까지도 “그냥 직장에 취직하면 안되느냐”라는 말을 했다. 정윤희는 “다른 사람들이 ‘그 집 자녀는 뭐해’라고 물어보면 ‘어느 회사 다녀’라고 말하면 끝나고 그것만으로도 뿌듯해 할 수 있는데 내가 TV에 많이 나오거나 유명해진 것도 아니다보니 뚜렷하게 할 말이 없어서 더 그러셨던 것 같다”며 “‘노래 해’ ‘공연 다녀’라고 해도 직접 찾아가서 보지 않으면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부끄러워하셨던 듯하다”고 설명했다.
트롯을 하게 된 것은 뮤지컬이 계기가 됐다. 정윤희가 참여했던 주요 장르의 작품들이 ‘악극’이었다. 대작, 라이선스 작품들이 아니라 이미자, 심수봉, 패티킴 등 선배 가수들의 노래로 꾸며지는 뮤지컬이다. 정윤희는 “악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면서 트롯을 부르다 보니 한국적 정서가 더욱 와닿았다. 짜르르한 느낌이 있다”며 “주위에서도 ‘트롯을 해보라’는 권유를 많이 했는데 마침 ‘갱년기인가봐’라는 곡을 만나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뮤지컬 배우, 가수 등의 활동을 접으려고 했다.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시절 비시즌에 단기 계약직으로 근무한 인연이 있는 회사에 정식으로 취직을 했다. 트롯 가수를 준비하다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했는데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집안에도 안좋은 일이 생기면서 ‘더 이상 꿈만 좇아서 나 좋은 일만 하며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 ‘이제 노래로는 내 운이 다한 것 같다’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회사생활을 하면서 현재 소속사 시앤올의 맹정호 대표를 만나 ‘갱년기인가봐’를 받고 다시 한번 가수의 꿈에 도전장을 내게 됐다. 회사 사장님도 적극적으로 지지를 해줬다. 정윤희는 “회사를 그만 둬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을 했는데 사장님이 ‘코로나19가 계속 되고 있는데 스케줄이 얼마나 많겠느냐’며 ‘스케줄을 미리 알려주면 업무조정이 가능하니 그냥 다녀라’라고 해주셨다”고 감사해 했다.
‘갱년기인가봐’를 발매한 후 주위 호응은 뜨겁다. ‘넌 진작에 트롯을 했어야 한다’는 말도 적잖이 듣는다고 했다. 많지는 않지만 행사 무대에도 오르고 있다. 가수활동 외에 드라마, 영화에도 출연을 했다. 물론 회사 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다. 정윤희는 “어떤 일이든 기회가 있을 때 ‘못한다’고 하기보다 ‘얼마나 잘 할 수 있을지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먼저 한다”며 “그게 내게 큰 재산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는 노래를 놓지 않겠다는 각오도 전했다.
“평생 노래하면서 사는 게 꿈이에요. 목소리도 나이가 든다고 하는데 트롯은 세월과 연륜이 묻어나면서 또 맛이 달라지는 장르거든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좋은 노래를 들려드릴 수 있는 장르가 트롯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