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 서울 중구 소공로에 있는 이데일리 편집국을 찾은 오승훈은 “늦게 출발했지만 시작이 좋다”고 ‘피고인’ 종방 소감을 전했다. “엄청난 일이 생겼다” “사실 선배들과 제작진이 이룬 성공인데 숟가락만 올린 것 같아 죄송스럽다”라고 말했다. 인터뷰에 앞서 자신을 알아본 팬이 다가오자 기분 좋게 맞아주기도 했다. 여러모로 꿈같은 시기를 보내는 중이다.
“사실 ‘피고인’ 식구들은 다 일본 오키나와로 포상휴가를 떠났습니다. 함께 가자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내가 작품에서 한 게 뭐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기에 만족도 못했고요. 지금은 더 채찍질 할 때입니다. 발성을 지적하는 분이 많아 노력 중입니다. 오디션 보랴 연습하랴 정신이 없네요.”
오승훈은 한때 ‘농구 꿈나무’였다. 어린 시절부터 코트에 살았다. 중학교를 다닐 때는 농구 명문고들이 탐내는 ‘루키’였다. 하지만 곧 손 부상을 입었고 이후 인대도 다쳤다. 부상이 겹치며 농구선수로서 가치가 떨어졌다. 한때 농구잡지에 얼굴을 비출 정도로 주목받았던 그는 긴 슬럼프에 빠졌다. 오승훈은 “당시 받았던 상처를 정말 깊었다”며 “학교 유급까지 하며 노력했지만 결국 받아주는 이는 없었다. 농구에 대한 꿈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지 몰랐다”고 되뇌었다.
좌절한 오승훈을 일으켜 세운 건 ‘피고인’의 배우 지성이다. 드라마 ‘뉴하트’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지성을 보고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후 지성이 연기한 흉부외과 전문의가 아니라 지성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걸 알았다. 농구공만 잡고 살았던지라 정보가 없었다. 무작정 연기 학원에 등록했다. 운 좋게 작은 기획사에 들어갔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현 소속사에 둥지를 틀었다. 지성이 소속된 나무엑터스다.
“회사에서 지성 선배와 한번 마주쳤지만 팬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눈을 못 쳐다보겠더라고요. 마치 뒤통수를 뚫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피고인’에 합류하고 난 후 말씀을 드렸습니다. ‘선배 덕분에 여기에 서 있습니다’라고요. 같이 출연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작품에 대한 열의, 연기에 대한 집중력, 상대 배우에 대한 예의까지 도요. 정말 대단한 배우라는 걸 새삼 다시 느꼈습니다.”
오승훈은 케이블채널 tvN ‘버저비터’를 통해 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프로농구선수 출신 감독들이 연예인으로 구성된 팀으로 맞붙어 최고를 가렸다. 농구선수를 꿈꿨던 오승훈에게 딱이다. 그는 Y팀 양희승 감독으로부터 드리프트 1순위로 지목돼 주장으로 맹활약했다. 우승 트로피도 차지했다.
오승훈은 “‘버저비터’를 통해 농구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털어냈다”며 “신인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드래프트 1순위 지목을 경험했다. 동료와 살을 부대끼며 훈련했고 우승까지 했다. 농구로 이룰 수 있는 모든 걸 해낸 느낌”이라 말했다. 10대 때 농구를 하며 느낀 좌절감을 10여년이 지나 ‘버저비터’로 지웠다.
“농구의 꿈이 꺾인 뒤 ‘세상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사실 10대 소년에게는 좀 빠르죠. 하지만 그때의 기억들이 저를 있게 했습니다. 남 탓만 해서 얻을 건 없습니다. 아무리 악조건에 처하더라도 스스로 구하는 자는 살아남기 마련이더라고요.”
오승훈은 현재 차기작을 위해 오디션 준비에 한창이다. ‘악역을 맡기에는 얼굴이 둥글다’는 평가에 다이어트도 시작했다. 얼굴선이 또렷하면 표정으로 전달하는 감정이 더 깊다는 선배 지성의 조언이 있었다. 발성부터 연기 트레이닝, 다이어트까지 눈 코 뜰 새 없다.
“농구 경기를 할 때 제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였습니다. 경기의 흐름을 읽고 팀을 이끌어야 하는 역할입니다. 실력없는 가드는 팀에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책임감이 강해야 하죠. 그게 성격으로 이어져 연기자 생활로 이어지는 듯합니다. 잘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갈고 닦고 있습니다. 두 번의 좌절은 경험하고 싶지 않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