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15%·은마APT·용돈 100원..'응답하라 1988'의 타임머신

강민정 기자I 2015.11.08 09:48:42
‘응답하라 1988’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주(主)는 가족 이야기라고 했다. ‘남편 찾기’ 코드가 발동되니 재미가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는 세번째 이야기에 이르러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고 있다. 1988년 그 시대, 그 향수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케이블채널 tvN 금토 미니시리즈 ‘응답하라 1988’이 방송 2회만에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평균시청률은 7%, 최고 시청률은 8%를 돌파했다. 10~50대 남녀 시청층에서도 가장 높은 몰입을 끌어낸 콘텐츠로 집계됐다.

‘응답하라 1988’은 쌍문동 골목을 배경으로 다섯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다. 혜리, 박보검, 이동휘, 류준열, 고경표 등 5명 친구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가족과 친구, 사랑으로 얽히는 에피소드를 전개한다. 이 과정에서 ‘응답하라 1988’ 제작진이 살려낸 그 시대의 디테일이 시청자를 타임머신에 태우고 있다. “저때는 저랬어”라는 부모 시청자와 “진짜 저때 저랬어?”라고 묻는 자녀 시청자의 ‘TV소통’이 세대 통합에 훈훈한 기운을 불어넣는 분위기다.

△“은행에 뭐하러 돈 넣어. 금리가 15% 밖에 안 되는디”

극중 택(박보검 분)은 천재 바둑소년이다. 바둑계의 돌부처로 불리는 대한민국 국보급 바둑기사다. 11세에 프로데 입단, 13세에 세계 최연소 타이틀을 획득했다. 88년까지 바둑랭킹 1위, 상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당시 받은 상금은 5000만원. 지금으로 따져도 한 대회의 우승 상금으로 적지 않은 돈. “아들 잘 둬 좋겠다”는 이웃 가족들의 이야기에 멋쩍어한 택이 아빠. “상금 어따 쓸겨?”라고 묻는 이웃들은 질세라 나름의 재테크 전략을 쏟아냈다. 그 중 하나가 “은행에는 맡기지 말아라”였다.

이유는 금리가 낮다는 것. 무려 15%다. 요즘 시대에 상상할 수 없는 수치다. 1~2%대 금리를 바라보며 그야말로 ‘은행에 넣을 필요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1988년 그 시대엔 15%가 저금리라 하니, 믿기 어려운 역사다. 실제로 이 시기 금리는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그나마 오른 수치다. 1980년대 초중반엔 20%대가 넘었다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건설경기가 호조를 보였고 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에 힘입어 한국 경제 최초로 3년속 흑자를 보인 때였다고. ‘그룹’이라 이름 붙은 기업이 크게 확장된 시기였고, 유가와 원화 그리고 금리가 하락하는 ‘3저 현상’이 두드러진 때였다.

‘응답하라 1988’
△“아파트에 투자혀. 음마? 은마, 그래 은마 아파트”

은행이 외면받던 시기, 눈이 돌아간 곳은 부동산이었다. 택이 아빠의 ‘5000만원 재테크’를 두고 한 소절 씩 목소리를 더한 이웃들. 낯익은 ‘명소’가 등장했다.

“그 어디여, 음마 아파트?” “아니, 은마요 은마.” “그래, 언마 언마 아파트.”

1978년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316대지 23만 9224㎡에 14층 규모 건물 28개 동으로 건설된 은마 아파트. 1979년 9월 3일 준공돼 강남구에서 개포 1단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아파트 단지였다. 무주택 서민을 위해 민간건설업자가 주택자금을 융자받아 분양하는 아파트였지만 그런 목적을 지향하기엔 지나치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규모가 컸고, 분양가격도 2000만원을 넘어 무주택 서민을 외면했다는 비난도 나왔다고. ‘응답하라 1988’ 속 대사를 봐도 5000만원 짜리 아파트는 기겁을 할 정도의 가치였다. “은마아파트가 딱 5000만원인데 그거 사요 그거”라는 말에 “무슨 아파트가 5000만원 씩이나 하노”라며 뒤로 놀라 넘어가는 모습은 2015년 시청자를 더욱 놀랍게 만든 대목. 현재 은마아파트는 10억원을 넘는 매매가에 거래되고 있다.

△“엄마 나 100원만~!”

‘응답하라 1988’이 비추는 다섯 가족은 참 푸근하다. 말 그대로 ‘사람 냄새 난다’는 표현이 꼭 맞다. 매일이 행복할 수 없는 전쟁 같은 일상이어도 그런 토닥거림 속에 정이 묻어난다. 할머니와 한 이불 덮고 자며 “할머니한테는 정말 좋은 냄새가 나”라고 말하는 손녀들이 요즘 어디 그리 많을까. 이 가운데 그 시대를 바라보며 ‘참 귀엽다’고 느껴지는 대사가 바로 ‘용돈’이었다. “엄마 나 100원만!”이라고 외치고 집을 나선 아들. ‘100원으로 뭘 할 수 있는데?’라는 궁금증을 가질 법한데, 그 시대 100원은 하루살이에 모자라지 않은 용돈이었다.

‘응답하라 1988’에서 ‘놀이’의 주 무대로 등장하는 오락실. 100원이 있으면 오락실에서 2~3판의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인형 뽑기에만 몇 천원을 투자해야 하는 요즘과 전혀 다른 풍경. 아이스크림이나 떡볶이를 사 먹는 일도 가능했다. 70장 정도 붙어있는 딱지 한판이 20원이었고, 5원이 있으면 사탕 하나를 사먹을 수도 있었다. ‘다그램’이라는 캐릭터 장난감, 펌프질을 하면 연결된 고무줄로 공기가 들어가 깡총깡총 뛰었던 ‘펌프말’이 100원이었다. 골목에서 많이 가지고 돌던 유리구슬은 3개 10원, 요즘과는 차원이 다른 별사탕을 담고 있었던 뽀빠이 간식이 한 봉지에 20원이었다. 라면이 한 봉지에 90원, 쫀디기와 아폴로가 30원, ‘똥펜’이라 불리는 모나미 153볼펜이 60원이었다. 우는 아이에게 떡 말고 건넨 설탕 녹여 만든 붕어과자는 50원이었다. 100원으로 누릴 수 있는 ‘어마무시한 행복’을 대리만족하는 일, 그 또한 ‘응답하라 1988’을 보는 재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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