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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힙합 신에 내려진 경고다. 현재 한국의 힙합은 대중화로 가는 길목에서 변질됐기 때문이다. 국내에 1990년대 도입된 이후 20여 년이 지났지만 현재 대중에게 힙합이 강한 인상을 남긴 요소는 욕설도 불사하는 직설적 랩 가사와 상대를 공격하는 디스 정도에 불과하다. 힙합을 모르는 사람이 접하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힙합이 제대로 저변을 넓히기도 전에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단편적인 부분만 부각돼 보여짐으로써 장르 자체가 왜곡됐다는 지적이다.
가요계 메인스트림에서는 한국 힙합의 시초로 홍서범의 ‘김삿갓’(1989)을 꼽기도 한다. 가사에 랩이 들어갔다는 이유에서다. 힙합신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김삿갓’은 랩을 차용한 노래로 힙합 문화가 한국에 유입되는 계기를 만들었을 수는 있지만 힙합이라고 부를 만한 음악은 아니라는 것이다.
힙합은 1970년대 초 미국 뉴욕의 브롱스에서 시작된 대중음악의 한 장르이자 문화 전반의 흐름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트가 빠른 리듬에 맞춰 자기 생각이나 일상을 이야기하는 랩을 기반으로 하는 음악적 특성을 지녔다. DJ 쿨 허크(Cool Herc)가 턴테이블의 브레이크 비트를 처음 만들었고 그 음악에 맞춰 비보이들이 춤을 출 때 DJ들이 턴테이블 조작으로 말을 못하니까 MC를 맡은 사람들이 4~8마디씩 외치던 게 랩, 힙합의 시작이었다. 랩과 디제잉, 비보잉, 벽에 스프레이 펜이나 라카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가 힙합의 4대 요소이다.
처음에는 “오늘 밤 신나면 소리질러봐” 등의 말을 하던 MC들이 특유의 비트에 맞춰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의 이야기, 사회 비판적인 내용 등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랩이 만들어졌다. 1990년대 초반 미국의 대표적 힙합 스타였던 투팍은 “나는 지구라는 세상에 태어난 리포터다. 랩이야 말로 따뜻하게 사는 사람들은 모르는 실상을 알려주는 강력한 도구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욕설을 포함해 폭력적이고 공력적인 단어가 랩에 들어간 것도 그래서다.
힙합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90년대다. 현진영과 와와,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이 본격적인 도입을 했다. 대부분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 ‘러브 랩’이었지만 교육 현실을 비판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 등 사회성을 담은 노래들도 대중의 인기를 끌면서 힙합의 저변이 넓어졌다.
이에 맞춰 1990년대 중반 PC통신에서 ‘검은 소리’ 등 동호회가 만들어지며 언더그라운드에서도 힙합신이 태동했다. 한국 힙합의 산증인이랄 수 있는 가리온의 MC메타에 따르면 1998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마스터 플랜’에서 힙합 가수들이 매주 대관공연을 하면서 언더그라운드 힙합신이 확대됐다. ‘러브 랩’보다는 힙합 본래의 색깔인 리얼리티를 살리고 정치적인 것을 비롯해 사회의 실상을 지적했다. 마스터 플랜에서 공연이 이어진 2002년까지가 미국에서 도입된 힙합이 한국적인 색깔을 갖춰간 시기로 꼽힌다. ‘미국파’ 타블로를 제외한 에픽하이 DJ투컷, 미쓰라진과 다이나믹 듀오도 마스터 플랜 출신이다.
이후 한국 힙합은 메이저 시장의 스타들과 언더그라운드에서 나름의 확고한 음악적 색깔을 갖춘 가수들을 통해 국내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입지를 다졌다. 다만 메이저 시장 가수들의 팬들은 힙합 문화가 아닌 스타를 향유하고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은 팬층이 마니아들에 그친다는 게 한국 힙합신의 취약점으로 꼽혔다.
방송이 나서자 그런 힙합신의 단점이 보완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랩 배틀을 통해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단어를 사용한 랩으로 상대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등의 부정적인 면이 크게 부각됐기 때문이다. MC메타는 “2000년대 중반 미국 폭스사에서 ‘랩 배틀’을 방송한 적이 있었다. 유명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 많이 나왔는데 ‘욕설은 절대 안된다’가 규칙이었고 출연자들은 그걸 100% 지켰다. 욕설이 나오려는 상황에서 래퍼들이 입을 닫으면서 묵음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쇼미더머니’ 출연자들이 여성을 비하하고 약자에 대해 거침없이 표현하는 걸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도 힙하퍼로서 잘못일 수 있다”면서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정당한 비판이 아닌 맹목적인 공격을 위한 비난이라면 문제이고 그걸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이 누구냐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한 힙합 커뮤니티 관계자도 “힙합 가수가 클럽에서 라이브 공연을 할 때 욕설을 섞어 ‘오늘 XX 재미있게 놀아봐요’라고 해도 그 장소의 사람들은 그런 문화를 허용하기 때문에 와 있는 사람들이다. ‘쇼미더머니’도 15세 이상 시청등급인데 욕설이 비프음으로 처리돼도 무방비 상태의 불특정 다수 시청자들은 힙합에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물론 방송의 파급력을 무시할 수 없다. 힙합신에서도 방송의 힘을 필요로 하고 있다. 여성 래퍼들의 경연인 Mnet ‘언프리티랩스타’를 통해 제시, 치타 등 무명의 래퍼들이 메이저 시장에 진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대중이 힙합에 친근감을 갖게 하면 더 많은 스타들이 탄생하고 힙합은 더 대중화될 수 있다.
다만 방송사 제작진이 장르에 대한 이해 없이 단지 프로그램의 인기만을 위해 힙합신을 휘두르면 왜곡된 형태로 문화가 소개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올해 데뷔 20년을 맞은 힙합그룹 허니패밀리 멤버 박명호는 “힙합 프로그램이 힙하퍼들에게 대중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를 준 것은 긍정적이지만 그런 프로그램에 나가지 않으면 유명해지기 어려운 풍토가 조성된 것도 문제라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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