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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E&M과 지산 포레스트 리조트(이하 지산)의 법정 다툼 탓이다. CJ E&M은 지산이 저작권(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최근 제소했고, 지산은 CJ E&M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맞섰다.
두 회사가 맞붙은 이유는 딱 하나다. 록 페스티벌을 둘러싼 싸움이다.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은 지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네 차례 열렸다. CJ E&M은 2010년(엠넷미디어 포함)부터, 지산은 처음부터 해당 페스티벌과 연을 맺었다.
양사는 지난해 페스티벌을 끝으로 결별했다. 표면상으로는 장소 사용 계약이 끝나서다. CJ E&M은 올해 대부도에서 행사를 이어가며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로 이름을 바꿨다. 지산은 박스미디어·KBS미디어와 손잡고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을 새롭게 개최한다.
애초 양측의 신경전이 예상됐다. 양측이 결별했을 당시 한 공연업계 관계자는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과 CJ E&M의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이 둘로 나뉘는 모양새가 되지 않겠냐”고 전망했다. 비슷한 시기 진행되는 록 페스티벌 특성상 양측의 해외 유명 아티스트 섭외 경쟁이 치열할 게 자명해졌다.
◇ CJ “부정경쟁” vs 지산 “치졸한 훼방”
CJ E&M이 막대한 금액을 쏟아부어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국내 대표 음악 축제로 정착시킨 노력을 무시할 수 없다. CJ E&M은 3년간 약 150억원의 예산을 해당 페스티벌에 투입했다.
CJ E&M 관계자는 “지산은 부지 제공 외 행사에 실질적으로 참여한 바 없다. 그럼에도 새로운 페스티벌을 만들면서 과거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사진 저작물 등을 (뮤지션 섭외를 위해) 해외 프로모터에게 소개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 및 부정 경쟁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한 CJ E&M은 “명칭도 원래 사용하던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과 매우 유사하게 지어 혼동을 일으켰다. 땅 주인의 횡포”라고 비판했다.
지산 측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지산 측 관계자는 “사진은 페스티벌이 열리는 지산리조트가 어떠한 행사가 열렸던 곳인지 설명하기 위한 참고 자료 중 하나였을 뿐“이라며 “‘지산’이란 브랜드를 못 쓴다는 것 역시 말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산 측 관계자는 이어 “결과가 뻔하지만 소송 기간 뮤지션 섭외나 후원사를 구하기 어렵다.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며 “CJ E&M이 치졸한 방법으로 새 페스티벌을 훼방 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 지산 “대기업 횡포” vs CJ “어불성설”
지산 측은 “CJ E&M의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성토했다. 오히려 CJ E&M이 자금력을 동원해 개최권과 서비스표를 인수한 뒤 불공정 거래를 일삼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데일리 스타in이 7일 입수한 ‘밸리 록 페스티벌’ 계약서(2010년 5월17일자)에 따르면 애초 이 행사의 판권을 갖고 있던 나인팩토리는 CJ E&M에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과 관련된 제반 권리(상표권 포함)를 회당 5억원에 팔았다. 면책 조항이 포함됐다. ‘을’(나인팩토리)은 계약 체결 이후 페스티벌 관련 자산 및 사업권 양수도에 대해 제3자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을’이 책임과 비용으로 이를 해결하고 ‘갑’(CJ E&M)을 면책한다는 내용이다.
엄밀히 짚고 넘어가면 문제가 있다. 나인팩토리는 앞서 지산과 계약 시 지산리조트에 페스티벌 타이틀을 제공하기로 했다. 더불어 계약 당사자들의 서명에 의한 사전 동의 없이 본 계약에 관한 권리 및 의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제 3자에게 양도·전매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나인팩토리와 CJ E&M은 페스티벌 앞에 ‘지산’이란 타이틀을 쓰고, 상표권을 사고 팔면서 정작 이름 주인인 지산리조트의 허락을 받지 않은 셈이다. 지산 측은 “CJ E&M이 이를 몰랐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논란의 소지도 생겼다. 훗날 ‘지산 록 밸리 페스티벌’의 기획과 뮤지션 섭외, 현장 관리 등을 책임졌던 나인팩토리의 핵심 인력이 CJ E&M으로 흡수됐다. 나인팩토리와 CJ E&M의 계약서상 연대 보증 책임을 지는 인물이 등장하는 데 바로 이 핵심 인력 중 한 명이 그 주인공이다.
지산 측은 “자본력으로 중소기업을 무력화시킨 뒤 핵심인력을 빼 가는 수순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죽이는 전형적인 행태”라고 비난했다. 김병태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 대표는 “이달 말께 재판 결과가 나오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 CJ E&M의 만행을 널리 알리겠다”고 별렀다.
CJ E&M은 “나인팩토리와 계약을 종료한 것은 해당 회사의 업무 진행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미 이에 대해 법적 절차를 밟아 일부 승소했다. 이를 두고 지산리조트가 대기업과 중소 공연기획사의 대결 구도로 설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발끈했다.
◇ “제살 깎기 경쟁 소모적..상생 노력 필요해”
지산리조트는 고려제강, 고려강선, 홍덕스틸코드, 고려용접봉, 전자랜드 등을 계열사로 둔 고려특수선재 그룹의 자회사다. CJ E&M은 tvN Asia 등 12개 한류 채널을 보유했다. 드라마·예능 콘텐츠 관련 수출 및 합작 사업도 추진 중이다. 영화 부문에서도 CGV 등을 통해 활약이 두드러진다.
김병태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 대표는 “엔터테인먼트계 종합 콘텐츠 기업을 지향하는 CJ E&M과 지산리조트의 몸집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CJ E&M이 공식적으로 본인과 공개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다.
독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대학 행동생물학(Ethology) 과학자들은 지난 2011년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템노토락스 롱기스피노수스 종 개미는 자기 군집을 침입한 노예사냥 개미를 만나면 물어뜯고 찌르는 등 치열하게 싸우지만 그보다 덜 위협적인 종과 마주치면 자기 집에서 끌어내는 정도에 그친다는 것이다.
공연업계 한 관계자는 “CJ와 지산 두 공룡의 싸움이 지금은 개미 싸움과 닮았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경쟁을 통해 서로 발전할 수 있다. 감정 싸움보다는 페스티벌 문화가 활성화된다는 측면에서 접근, 양측이 서로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