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 '박지성에게 배워야 할 심플라이프'

노컷뉴스 기자I 2007.11.30 13:47:52


[노컷뉴스 제공] 박지성(26·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2002 한일월드컵 직후 PSV 에인트호벤으로 자리를 옮긴 거스 히딩크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아 유럽무대에 입성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가장 먼저 러브콜을 받은 선수는 박지성이 아니라 이천수(26·페예노르트)였다. 당시 이천수는 스페인행을 위해 히딩크 감독의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후순위'였던 박지성이 2003년 초 이천수 대신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02 한일월드컵 때만 해도 이천수는 박지성보다는 한 수위의 선수로 평가됐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역전됐다. 이제 박지성은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선수다. 지금 박지성과 이천수에 대한 평가는 결코 동일선상에 있지 않다. 물론 이천수의 축구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박지성의 위치와 이천수의 처지는 예전과는 180도 달라져 있다.

박지성이 유럽에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동안 이천수는 롤러코스터 행보를 그렸다. 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좌절을 맛본 뒤 K리그에서 보란 듯이 재기했지만, 지난 9월말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이적한 뒤 최근 또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시즌 도중 '2주간의 휴가'를 받았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유럽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재능과 자질 면에서 박지성보다 이천수의 손을 들어준다. 그럼에도 현재 두 선수의 기량이나 처지가 반비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 관리'와 '유럽에서의 단조로운 생활을 이기는 힘'에 큰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지성, '맨체스터 수도승'의 심플 라이프(Simple Life)

맨체스터에서의 박지성을 지켜본 이들은 한결같이 '수도승' 같다고 혀를 내두른다. 심지어 그의 부모님까지 "우리 아들은 참 특이하다"며 두손을 들 정도다.

맨유 입단 이후 박지성의 삶은 놀랄만큼 단조롭다. 오전 8시쯤 기상해 1시간 가량 준비를 마치고 9시께 맨유 연습구장으로 직접 차를 몰고 이동한다. 오전 내내 훈련을 소화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1시 정도. 돌아온 직후에는 점심을 먹는다. 외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박지성은 집에서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해먹는 경우도 많다.

일주일에 세번은 오후 3시부터 두시간씩 영어 과외를 받는다. 저녁 6시에는 저녁을 먹고, 이후 독서를 하거나 친구들과 통화를 한다.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TV를 볼 때도 있지만 밤11시가 되면 정확하게 잠자리에 든다. 1년 중 360일 정도는 이 생활 패턴이 반복된다. 숙소와 집을 오가는 '다람쥐 쳇바퀴'같은 삶의 연속이다.

두 달에 한번 꼴로 영어 과외 선생님 집에 놀러간다. 이때는 간혹 와인을 마신다. 그러나 한잔을 절대 넘기지 않는다. 박지성은 '아무리 술을 마셔도 절대 취하지 않는 체질'로 유명하지만 시즌 중에는 거의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이처럼 '단조로운 생활'을 이겨내는 힘은 박지성이 정상에 설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이다. 유럽에서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이영표(토트넘), 설기현(풀럼)의 생활도 박지성과 비슷하다. 다만 이영표 설기현에게는 '종교'와 '가족'이 함께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천수 생활 스타일', 유럽에선 '그다지...'

이천수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선수다. 그는 축구 선수 중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넓은 사회적 인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축구 외에 챙겨야할 모임이나 대소사가 많다. 시즌 중 음주를 마다하도 않는다. 연예인과의 열애설 등 스캔들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이런 이천수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는 없다. 프로선수는 그라운드에서 모든 것을 말한다. 적어도 K리그에서 이천수는 '최고'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혹자는 "이천수야말로 진정 자기 관리에 철저한 선수"라고 주장한다. 축구 이외의 영역에 대해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결같이 축구 기량을 유지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역설적인 의미다.

하지만 유럽에만 나가면 '이천수 스타일'은 통하지 않는다. 2003년 진출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이천수의 발목을 잡은 것은 실력보다 적응 실패였다. 언어소통의 어려움, 외로움, 이질감 등을 호소하며 이역만리에서 어머니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축구에 전념하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다(?)'

"두 번 실패는 없다"는 굳은 결심 속에 최근 네덜란드리그에 첫발을 내딛었지만 또 다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천수가 왜 소속팀에서 휴가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소속사 IFA는 "몸살감기, 장염이 겹친 탓에 휴가를 얻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언론은 '향수병'을 거론했고 이천수의 영입을 주도한 피터 보츠 페예노르트 기술이사는 '두통'이라고 말했다.

이천수의 지인은 "팀 동료들과의 갈등은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처리해야 하는, 말 못할 문제로 이천수가 네덜란드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다"고 귀뜸하고 있다. 사생활에서의 고민이 유럽 생활의 적응에 장애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어쨌든 휴가를 얻은 이천수는 국내 프로팀 관계자들에게 "K리그로 복귀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이적한지 두달여 만이다. 다음달 11일 네덜란드로 복귀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이후 이천수 측이 구단에 'K리그로의 유턴'을 요구할지 모른다는 조심스런 예측도 나오고 있다.

한국 선수가 유럽에 진출하면 '현지 적응'은 가장 큰 적이다.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은 이미 이 산을 넘었거나, 열심히 넘어가고 있다. 유럽에만 나가면 '수도승'은 커녕 '동자승'만도 못한 모습을 보이는 이천수와의 가장 대비되는 점이다. 이천수가 유럽에서의 진정한 성공을 원한다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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