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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초한지, 수컷들의 '초라한 연회'

고규대 기자I 2013.03.20 11:25:14
영화 ‘초한지: 왕의 부활’.
[이데일리 안준형 기자] ‘초한지 : 영웅의 부활’(감독 루 추안)의 원래 제목은 ‘왕적성연(王的盛宴)’이다. ‘왕의 성대한 연회’란 뜻이다. 영어 제목은 ‘The Last Supper’. ‘최후의 만찬‘쯤 된다. 국내에서 ‘초한지’란 제목으로 개봉한다. 삼국지와 더불어 중국의 대표적 고전으로 꼽히는 초한지의 인지도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기본 골격은 소설 그대로다. 진나라에 대항하는 의군을 이끈 패왕 항우(다니엘 우 분)와 용의 아들로 불렸던 유방(류예 분), 그리고 믿음스러운 부하 한신(장첸 분). 형제보다 가까웠던 세 남자가 서로에게 칼을 겨눴던 과정을 담았다.

이 영화는 ‘이름값‘은 제대로 하지 못한다. 초한지를 소설이 아닌 스크린에서 보겠다는 관객은 적어도 두 가지 기대를 안고 극장을 찾을 것이다. 첫 번째는 스크린을 압도하는 전투신이다. 수만개의 화살이 하늘에서 우두둑 쏟아지고, 수천명의 군사들이 황야에서 번뜩이는 칼날을 휘두르는 ‘전투신의 쾌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칼집에서 칼을 뽑다 만 모양새다. 제작비 200억원을 어디에 썼는지 의아스럽다.

두 번째 기대는 수컷들의 의리다. 아니 의리보다는 형제보다 가까웠던 의리가 배신으로 돌변하는 순간이다. 유방과 항우, 한신 세 남자가 어떻게 배신하고,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는지다.

하지만 유방과 항후가 어떻게 앙숙이 됐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형제와 같은 그들은 물과 불 같은 앙숙이 되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설명해줄 뿐이다. 아마도 루 추안 감독은 이 세남자의 의리와 배신보다 권력과 탐욕앞에 무너져 내리는 인간의 모습에 방점을 찍은듯하다. 영화는 세 남자의 심리 묘사에 집중한다. 하지만 세 남자를 통해 권력과 탐욕에 눈이 먼 인간을 탁월하게 표현해놨다는 느낌을 받긴 어려웠다. 여기에 과도한 내레이션 사용이 영화의 전체 흐름을 방해했다.

남자들의 캐릭터가 무너진 틈을 한 여인이 비집고 일어선다. 중국의 3대 악녀로 꼽히는 유방의 아내 여치(친란 분)다. 그녀는 평번한 아내에서, 권력과 탐욕에 물들며 점점 악마로 바뀌어간다. 텅 빈 눈빛으로 유방 주위의 개국공신들을 하나하나 숙청해가는 연기는 인상적이다. 여치를 연기한 친란은 시대를 관통하는 악녀의 모습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이 영화가 지난해 중국에서 5개월간 개봉이 지연됐던 이유를 ‘여치‘ 탓이라고 뉴욕타임즈가 분석하기도 했다. 여치가 지난해 중국을 발칵 뒤집었던 보시라이의 부인 구카이라이와 묘하게 겹친다는 것이다. 차라리 여치를 주인공으로 악녀에 대해 파고들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마저 남는다. 러닝타임 116분간 성연(盛宴)은 없었다.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은 오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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