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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임성일 객원기자] 문제1) 잉글랜드 클럽 중 가장 많은 1부 리그 우승 경력을 자랑하는 클럽은 어디일까.
문제2) 잉글랜드 클럽 중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을 가장 많이 보유한 클럽은 어디일까.
공히 같은 클럽이 답이다. 언뜻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를 떠올릴 수 있겠으나 원하는 이름은 자타가 공인하는 축구종가의 명문클럽 리버풀이다. 1부 우승 횟수가 자그마치 18회로 맨유보다 1번 더 많고, 5번의 꿈의 무대 정복기 역시 앞선다(맨유 2회). 이쯤이니 자존심으로 똘똘 뭉쳤다는 리버풀 팬들의 절대적인 충성심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언뜻, 국내팬들로서는 갸웃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04-05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AC 밀란이라는 철통 자물쇠를 상대로, 0-3으로 끌려가다 극적으로 3-3 동점을 만든 뒤, 승부차기 끝에 활짝 웃었던 그때 그 기억은 아직 남아있다. 그러나 도통 잉글랜드 리그에서 리버풀이 권좌에 오르는 장면은 떠오르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리버풀의 자국 리그 마지막 우승이 1989-90시즌이다. 요컨대 잉글랜드 1부 리그가 프리미어리그로 재편된 1992-93시즌 이후로는 정상에 서본 적이 없고 근 20년 동안 맨유와 아스널 그리고 첼시에게 헤게모니를 빼앗겼다는 뜻이다.
실상 최근 10시즌 동안 리버풀의 리그 성적을 살피면 2001-02시즌 2위를 제하고는 모조리 3~5위를 오르내렸다. 소위 ‘빅4 클럽’이라는 명성도 턱걸이하고 있는 것과 진배없다. 시즌을 앞두고는 늘 ‘이번은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으나 피날레를 앞둔 시점의 붉은 제국은 번번이 어깨를 펴지 못했다. 리버풀의 강성 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나, 외려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획득을 위한 마지노선(리그 4위)에서 애를 태우던 일이 잦았다. 그런데, 적어도 올 시즌 초반 리버풀의 페이스는 상당히 좋다.
2008-09시즌 시작 이래 현재까지 12번의 각종 공식전 성적이 9승3무. 이쯤이면 대나무가 쪼개지는 기세와 다름없다. 프리미어리그는 5승2무(7라운드 현재)로 첼시와 승점은 같으나 골득실에서 밀려 2위에 올라있는데 속속 과정을 살피면 리버풀의 내용이 보다 실하다.
9월13일 안방에서 열린 맨유와의 176번째 ‘장미 전쟁’에서 2-1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고 9월27일에는 지역 앙숙 에버튼과의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2-0 완승을 거뒀다. 2경기 모두 단순한 1승 이상의 의미를 지녔던 대결이다. 지난 주말이던 10월5일에는 올 시즌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맨체스터시티 원정에서 2골을 먼저 허용하고도 3골을 뽑아내 승부를 뒤집는, 근래 리버풀답지 않은 강인한 모습을 자랑하면서 승점 3점을 또 다시 챙겼다.
챔피언스리그 역시 다르지 않은데 마르세유와 아인트호벤이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각각 2-1과 3-1로 제압하면서 D조 선두에 올라있다. 꿈의 무대라 불리는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편한 조를 찾는 것이 모순이지만 특히나 D조는 4팀의 전력이 객관적으로 가장 대동소이해 그 흔한 ‘죽음의 조’라 불린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리버풀의 최근 기세가 과연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좋은 방증이라 하겠다. 베니테스 감독 부임 5번째 시즌, 확실히 리버풀의 스쿼드에서 강자다움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지난 시즌 놀랍게도 빠르고 알차게 잉글랜드 무대에 적응했던, 그리고 유로2008을 통해서 탄력을 받았던 주포 토레스의 날갯짓이 새 시즌 초반부터 펄럭이고 있다는 것, 간판플레이어 제라드의 리딩 능력과 필요할 때의 해결사 기질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 오로지 리버풀에서만 활약하고 있는 ‘원 클럽 맨’ 수비수 캐러거가 이끄는 플랫4가 7경기에서 단 넉 점만 허용하고 있다는 것 등 에이스급 자원들이 모두 제몫을 해주고 있다는 게 우선 반갑다. 여기에 토레스의 파트너가 빈약하다는 아킬레스건을 해소하기 위해 영입한, 메인 스트라이커를 돕는 데 일가견 있는 다기능 공격수 로비 킨의 가세도 성공적이라는 평가고, AS로마로 떠난 리세의 공백이 불안했는데 대체제로 영입한 도세나의 융화 역시 전혀 무리 없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소위 ‘분위기와 기세’라는 측면에서 맨유나 첼시, 아스널 등 라이벌들에 비해 부족했던 리버풀이 일찌감치 자신감을 찾았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던 맨유, 에버튼, 맨체스터시티, 그리고 챔피언스리그의 2경기는 모두 쉽지 않은 매치업이었다. 이 5경기에서 반타작만 거뒀어도 성공적이라 평할 수 있는데, 전승으로 날았으니 실로 기대 이상의 성과이다. 아직 초반이기는 하지만 리버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첼시의 초점이 프리미어리그 우승이나 FA컵 제패보다 챔피언스리그 트로피에 입 맞추는 것에 맞춰졌다면, 상대적으로 리버풀은 자국리그 정상이 더 목마르다. 클럽에 대한 애정에 관한한 둘째가라면 서러운 리버풀의 열혈 서포터 ‘더 콥(The Cop)’과 함께 오래도록 잠자던 리버풀이 과연 비상할 수 있을까.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를 지켜보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손색없는 일이다.
끝으로 사족을 붙인다. 스티븐 제라드라는 잉글랜드의 보배 커리어 속에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력이 없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리버풀이 얼마나 리그 우승에 굶주렸는지, 절실함으로 따지자면 그들을 따라올 수가 없다. /<베스트 일레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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