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집에 해당하는 새 정규앨범의 제목은 ‘Zip’(집)이다. 자이언티는 앨범 제목에 맞춰 단독 주택을 탈바꿈한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집들이 콘셉트’로 라운드 인터뷰를 진행하는 섬세한 면모를 보여줬다. 전기벽난로 앞이자 커다란 스피커 옆에 앉은 그는 “3번째 정규 앨범 집들이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로 취재진을 미소 짓게 했다.
본격적으로 인터뷰의 문을 연 자이언티는 “창작을 할 때 ‘좋은 그릇’이라고 할 수 있는 제목을 먼저 짓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음악을 담을까 고민하다가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편안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에 맞춰 압축파일 확장자이자 공간이라는 의미를 지닌 ‘Zip’을 제목으로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눈앞까지 뒤덮은 덥수룩한 탈색 머리와 검은 뿔테 안경이 도드라지도록 클로즈업한 자이언티의 얼굴 사진이 담긴 앨범 커버도 제목 만큼이나 흥미를 자아낸다. 어느 때보다 줌을 바짝 당겨 얼굴로 가득 차운 커버에는 자전적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낸 곡들을 채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자이언티는 “기본적으로 이전 앨범들과의 통일성을 살리기 위해 안경 낀 남자(자이언티)의 정면 사진을 넣었고, 솔직한 음악을 담았다는 의미를 더하기 위해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경은 클래식함을 상징하는 보잉 디자인인데 알고 보면 신소재를 사용하는 브랜드의 제품”이라며 “클래식함과 미래지향적인 면을 동시에 표현하기에 알맞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싱글 형태로 선공개한 곡은 단 한 곡도 없다. 전곡 음원을 6일 오후 6시 각종 음악플랫폼을 통해 동시에 정식 발매한다. 자이언티는 “몇 곡을 싱글로 먼저 내는 게 수익적인 측면에서 나은 선택일 수 있는데, 정규 앨범을 내지 않은 지 오래된 가운데 최근작이 싱글이라 또 싱글을 내면 아쉽다고 여기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았다. 진정성을 가진 뮤지션이라는 걸 다시 한번 브랜딩해야 할 때라는 생각도 있어서 정규 앨범을 통해서 신곡들을 처음 선보이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6년이 지났다는 건, 따져보면 그 시간 동안 중학교 2학년생이었던 리스너가 스무살이 되었다는 거잖아요. 그간 세상이 많이 바뀌기도 했고요.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저에 대한 기준점을 많이 낮췄어요. 수치적으로 제가 (100점 만점에) 4~50을 만들던 아티스트였다고 치면, 이번엔 0에서 1을 만드는 게 목표라는 생각으로 접근해보려고 해요.”
트리플 타이틀곡 중 ‘리셋 증후군’(현실과 가상 세계를 혼동하면서 인간관계를 컴퓨터를 ‘리셋’ 시키듯이 쉽게 버리고 다시 시작하려는 사회부적응 현상)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한 유러피안 팝 스타일 곡인 ‘언러브’는 영국 출신 일렉트로닉 팝 듀오 혼네와 협업해 완성했다. 뮤직비디오는 그룹 뉴진스가 모델인 음료 광고를 촬영한 바 있는 네버 마인드 프로덕션이 연출했다. 자이언티는 “완벽주의자이자 결벽증 환자인 나르시스트 주인공이 완벽한 이별을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담았다”며 관심을 당부했다.
공통된 움직임에 대한 고찰을 주제로 다루며 2000년대 초 유행한 일본 시부야케이 음악을 색깔을 낸 또 하나의 타이틀곡 ‘V’에는 남매 듀오 악뮤가 피처링 아티스트로 참여했으며, 수록곡 중 ‘불 꺼진 방 안에서’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는 각각 재즈 아티스트 윤석철과 트럼펫 연주자 베니베넥 3세가 참여했다. 풍성한 즐길 거리로 채워진 ‘Zip’이다.
자이언티는 “앨범을 통으로 들어주셨으면 한다”면서 “잠에서 깬 뒤 몸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틀어놓고 약속 준비를 하면 좋을 만한 앨범이다. 전곡을 다 들어도 30분 정도인, 리스닝 타임이 짧은 앨범이라 차량이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듣기에도 좋은 앨범이라는 생각”이라고 감상법을 추천해줬다.
“업계 안에 있는 한 명의 인재로서는 좋은 기여를 할 수 있는 영향력을 지닌 존재로 성장해나가는 것, 아티스트로서는 에너지가 다하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영감을 받으며 녹슬지 않는 것, 그게 저의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