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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손빈의 ‘그물’을 300여명이 입을 모아 목청껏 불러젖혔다. 빠르게 리듬이 반복되는 후렴구 ‘너도 걸려 나도 걸려 모두 다 걸렸네’를 부를 때는 자지러진 웃음도 터져나왔다. 장민호 ‘7번 국도’, 성진우 ‘하얀미소’, 이애란 ‘백년의 길’, 지나유 ‘사랑아 반갑다’, 진해성 ‘사랑반 눈물반’으로 흥겨운 트로트 메들리가 이어졌다.
KBS1 ‘아침마당’의 ‘스타 노래강사와 함께 음치 탈출 대작전’ 코너에 출연한 노래강사 겸 작곡가 송광호가 경기도 구리시 청소년 수련관에서 매주 한번씩 진행하는 노래교실. 강의 시작을 전후해 300개 좌석은 어느 새 빼곡히 들어찼다. 수강생은 40~70대로 중장년층이 주류였다.
◇ 전국 400만 수강생 ‘백세인생’ 띄웠다
모두 앉아 있었지만 노래를 부를 때는 흥이 넘치는 듯 어깨를 흔들어댔다. ‘7번 국도’를 부르던 도중 수강생들은 ‘사랑아~’ 부분에서 음을 끌어 올리며 무대 위 송광호를 따라 손을 아래에서 위로 들어 올리는 율동도 했다. 송광호는 수강생들에게 ‘사랑반 눈물반’을 지도하면서 “시작 음이 높이 올라간 노래는 드물다. 첫 구절 뒤에 올리라고 했는데 절반은 무릎 근처에서 머무른다”고 가창 방법도 친절하게 설명했다. 수강생들은 노래 중간에는 송광호의 유도에 맞춰 “아싸 아싸” “사랑해요 송광호”를 외치기도 했다. 모두들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이 곳에서 수강생들에게 가르치는 노래의 80%는 트로트를 비롯한 일명 성인가요다. 노래교실은 전국 5000여 곳, 수강생은 연 4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수강생은 여성이 대다수이지만 요즘은 간혹 남자 수강생들도 보인다. 아내의 이끌림에 마지못해 따라나왔다가 금세 분위기에 빠져버리는 남자들도 있다고 한다. 대부분 음악 장르는 비슷하다.
유행가는 대중의 입을 통해 불려야 한다. 인기곡의 기준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느냐다. 그런 점에서 노래교실은 트로트가 살아 숨쉬는 장소다. 송광호는 “내가 작곡한 진미령의 ‘미운 사랑’, 진성 ‘안동역에서’, 이애란 ‘백세인생’ 등은 노래교실을 통해 인기를 얻은 노래들”이라며 트로트 시장에서 노래교실의 파급력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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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교실은 지치고 상처받은 대중의 마음을 위로하는 트로트 가사의 매력이 크게 어필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수강생 최은례(56·여) 씨는 “트로트는 마음에 와닿는 가사가 많다. ‘애 낳고 30년’이라는 노래는 아이를 낳고 잘 되기를 바란다는 가사가 우리네 삶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우울증을 앓다가 친구의 권유로 노래교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새 우울증이 사라졌다. 주부로 반복되는 일상을 살다 노래교실에 나오면서 활력을 얻었다. 최씨는 “스스로 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나오면서 맛을 내서 노래를 부르는 방법을 배우고 따라 부르면서 삶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수강생들에게는 노래교실이 자녀와 소통을 하게 해주는 계기도 제공한다. 수강생 김승남(55·여) 씨는 “구리에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송광호 선생님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여기 와서 풀고 간다”며 “집에서 노래를 흥얼대고 있으면 20대인 딸이 따라부르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일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트로트는 세상을 살아가는 에너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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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가수들에게 그런 노래교실은 노래 홍보를 위해 반드시 챙겨야 할 시장이다. 트로트 가수들에게 방송을 통한 신곡 홍보 기회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노래교실은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 되고 있다. 특히 송광호를 비롯해 바다새 멤버 김성기, 박미현 건국대 미래지식교육원 노래지도사 과정 교수 등 스타 강사들에게는 출연을 자청하는 가수들이 줄을 잇는다.
이날 초대가수로 장민호가 무대에 올랐다. 장민호는 ‘7번 국도’를 직접 부르며 노래교실에 흥을 더했다. 노래교실이 끝난 이후에는 수강생들과 사진을 찍었다. 장민호와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10여명이 줄을 섰다. 아이돌 가수의 팬미팅을 연상케 했다.
장민호는 “노래를 즐기고 싶어하는 중장년층과 신곡을 알려야 하는 트로트 가수에게 노래교실은 ‘윈-윈’의 장소”라며 “노래교실 수강생들은 직접 등록을 하고 노래가 좋아서 오는 분들이기 때문에 마음이 열려 있다. 가수가 노래를 하기에 좋다. 공감대도 쉽게 형성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공연장, 방송을 통한 가수들의 무대가 다수의 대중을 겨냥한 마케팅이라면 노래교실은 1 대 1 마케팅”이라며 “부담은 없다. 오히려 흥에 굶주른 분들과 한바탕 재미있게 놀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온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