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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에서 채종범은 조연이었다. 악역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보는 이들에게는 많은 욕을 먹었지만 제작자들에겐 참 고마운 존재였다.
지난해 KIA는 7월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8월 들어서는 기어코 선두자리를 차지하며 질주했다.
그 즈음 어느날. 최태원 코치는 채종범에게 전화를 한통 건다. "종범아, 정말 고맙다. 네가 열심히 해준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당시 채종범은 무릎 인대 파열로 재활중이었다. 2009시즌엔 단 한경기도 뛰지 못했다. 2008년의 부진(타율 1할9푼7리)을 씻기 위해 스프링캠프부터 쉼 없이 노력해 온 과정에서 무리가 생겼던 것이다.
그런 채종범에게 무엇이 새삼 감사했던 것일까. 최 코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노력이 가져온 성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KIA는 선수층이 두터운 팀이 아니다.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다. 그러나 종범이가 가세하면서, 또 정말 많은 노력을 하면서 시너지 효과가 생겼다. 지난 스프링캠프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모두 인정하는 일이었다. 종범이는 최선을 다했고 그런 기운이 다른 선수들에게까지 좋은 영향으로 이어졌다. 건전한 경쟁을 통해 고른 기량 향상이 나타났다."
시즌 1은 KIA의 10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누구도 채종범의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 한켠엔 분명 그의 이름이 있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 이름에 감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다시 2010시즌. 채종범표 드라마의 시즌 2가 시작됐다. 이번엔 그도 주연 중 하나다.
출발은 좋지 못했다. 부상 공백 탓에 감각이 떨어졌던 탓이다. 채종범은 4월까지 고작 9경기에 나서 3개의 안타를 때려내는데 그쳤다. 그리고 다시 1군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7월 중순에 접어들며 사정이 바뀌었다. 후유증을 털어낸 채종범은 맹타를 휘두르며 타선의 한자리를 꿰찼다.
채종범의 7월 타율은 4할6푼4리(28타수 13안타)나 된다. 8경기서 3개의 홈런을 앞세워 11타점이나 올렸다.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 활약이기에 더욱 값지다. KIA는 전반기 막판 16연패를 당하며 4강권에서 멀어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후반기 첫 롯데 시리즈서 2승을 거두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그 중심엔 물론 채종범이 있었다.
김상현의 복귀와 채종범의 제자리 찾기가 더해지며 KIA는 이전과는 다른 공격력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해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채종범은 SK에 투수 전병두와 내야수 김연훈을 내주고 얻은 카드다. 그만큼 비난의 크기도 컸다.
하지만 채종범은 결코 쉽게 외면할 선수가 아니다. 김성근 SK 감독은 2007년 취임한 뒤 선수 면면을 살펴본 뒤 "군대 간 채종범만 있으면 우승도 노려볼 수 있겠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거듭된 공백은 채종범에게 커다란 벽이 됐다. 그러나 이제 분위기가 달라졌다. 2년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린 땀이 조금씩 결실이 돼 돌아오고 있다.
이제 채종범표 드라마의 시즌 2는 이야기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시즌 2의 엔딩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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