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SPN 송지훈 객원기자]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는 혈통을 강조하는 ‘순혈주의’적 색채가 유난히 강한 국가로 손꼽힌다. 근래 들어 적잖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한국인은 단일민족’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우리 국민 대다수에게 어색하지 않은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스포츠계 또한 마찬가지다. 다양한 종목에서 수많은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지만 ‘피부색(인종)이 다른 한국선수’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일부에서 제기된 ‘외국인 귀화를 통한 국가대표팀 전력 업그레이드’ 주장이 이렇다 할 호응을 받지 못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는 로페스, 라모스, 산토스 등 남미 출신 자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가대표팀의 역량 강화를 꾀해 온 일본과 대비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축구대륙’으로 손꼽히는 유럽의 행보 또한 일본과 다를 바 없다. 기실 20세기 들어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유럽으로 대거 이주한 이후 ‘유럽=백인’이라는 개념은 일찌감치 무너진 상태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다채로운 인종의 선수들로 A팀을 구성하고 있는데, ‘레블뢰 군단’ 프랑스처럼 멤버 대부분이 흑인으로 채워진 나라도 있다.
여기에 덧붙여 근래 들어 유럽 국가들의 새로운 전력 강화 트렌드로 자리 잡은 방식이 바로 앞서 언급한 ‘귀화’다. 이중 국적 선수들을 대상으로 자국 대표팀을 선택하게 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나라 선수 중 대표팀 경력이 없는 인물을 전략적으로 영입해 국적 변경을 요구하는 케이스다. 물론 엄밀히 말해 타국 기대주의 국적을 바꿔 자국 대표팀에 발탁하는 방식이 처음은 아니다. 그럼에도 귀화라는 제도가 근래 갑작스레 주목받기 시작한 건 같은 방법을 통해 남미 출신 선수들이 대거 유럽 땅으로 몰려드는 것과 관련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최근에 막을 내린 유로2008이다. 스페인의 우승과 함께 끝난 이 대회에 대해 적잖은 수의 현지 전문가들은 “브라질이 17번째 본선 진출국으로 참가한 것 같다”는 촌평을 내놓았다. 남미 출신 선수들이 급격히 늘어난 현실을 꼬집은 결과물이다.
실제 본선 진행과정에서 브라질 출신 귀화 선수들의 활약상은 놀라웠다. 우승팀 스페인의 중원을 든든히 책임진 마르코스 세나(비야레알)를 비롯해 데쿠(포르투갈/첼시), 페페(포르투갈/레알 마드리드), 메메트 아우렐리오(터키/레알 베티스), 호제르 게레이루(폴란드/레기아 바르샤바) 등이 수준급 기량을 선보이며 대회장을 뜨겁게 달궜다. 특히나 게레이루의 경우 귀화에 필요한 최소거주기간을 채우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로2008 최종 엔트리 제출 마감 직전 시민권을 취득해 특혜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유럽선수권 본선 무대에 대한 참가국들의 관심과 기대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참고로 이탈리아의 측면자원 마우로 카모라네시(유벤투스)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아주리 군단에 합류한 케이스이며, 같은 클럽에서 뛰는 브라질 출신 공격수 아마우리 또한 최근 이탈리아 귀화를 공식 선언한 바 있다.
이렇듯 ‘남미 선수 귀화’라는 독특한 현상이 유럽무대에서 점차 무게감을 높여가는 이유로는 팀과 선수의 요구조건을 단기간에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선수 입장에서는 치열하기 이를 데 없는 남미 지역의 대표팀 발탁 경쟁을 피해 한결 손쉽게 A팀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뿐만 아니라 명실상부한 유럽인으로 거듭난 만큼 용병 수입 제한 조치의 적용을 받지 않아 몸값을 끌어올리기도 한결 수월하다.
한편 쓸 만한 자원을 귀화시킨 국가의 대표팀 입장에서는 자국 전력의 아킬레스건을 단번에 전술의 요충지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느낄 법하다. 유럽클럽무대를 통해 실력을 검증받은 선수에 한해 귀화를 추진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만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긍정적이다.
유럽 빅 클럽의 선수 보급기지 역할을 담당하는 동유럽 지역에서 최근 남미 선수 귀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 가능하다. 다수의 남미 출신 선수들이 A팀 주전확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동유럽에 둥지를 튼 후 각종 메이저대회에서의 활약상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는 이야기다.
다가올 2008-09시즌엔 어떤 남미 출신 스타가 새롭게 등장할까. 그리고 어느 나라가 남미산 신형 무기를 바탕으로 전력 업그레이드를 이룰까. 축구계에 나타나고 있는 유럽과 남미의 ‘특이한 결합 방식’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에 관심이 모아진다./<베스트 일레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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