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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9' 이룬 당구여제 김가영 "부끄럽지 않은 선배 되고 싶어요"

이석무 기자I 2024.09.18 13:41:02
추석연휴에 열린 프로당구 LPBA 대회에서 통산 9번째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김가영이 활짝 웃고 있다. 사진=PBA 사무국
김가영이 결승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으로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큐를 높이 들어올리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진=PBA 사무국
[고양=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얼떨떨하네요.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기분이 너무 좋네요”

프로당구 LPBA에서 개인 통산 9번째 우승을 달성한 ‘당구여제’ 김가영(하나카드)은 인터뷰실에 들어오자마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김가영은 17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크라운해태 LPBA 챔피언십 한가위’ 결승전서 한지은(에스와이)과 3시간 가까운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세트스코어 4-3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컵을 번쩍 들었다.

이로써 김가영은 PBA-LPBA 통산 9승을 달성,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8회)을 제치고 프로당구 최다 우승자가 됐다. 아울러 지난달 베트남 하노이서 열린 ‘2024 에스와이 바자르 하노이 오픈’에 이어 2연속 우승도 이뤘다. 이번 우승으로 상금 4000만원을 추가하면서 LPBA 선수 최초로 통산 상금 4억원(4억2180만원)도 돌파했다.

사실 김가영에게는 어느 때보다 쉽지 않은 결승전이었다. 결승 상대 한지은은 무서운 패기로 김가영을 몰아붙였다. 64강전부터 4강전까지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3-0으로 이길 만큼 컨디션도 좋았다.

5세트까지 세트스코어 3-2로 앞섰고 6세트에서 먼저 챔피언 포인트에 도달한 것도 김가영이 아닌 한지은이었다.

하지만 김가영의 관록은 고비마다 빛났다. 경험이 부족한 한지은이 중요한 순간 흔들리는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9점을 먼저 얻으면 승리하는 최후에 7세트에서도 3-7까지 몰렸다. 한지은이 2점짜리 뱅크샷 하나만 성공시키면 그대로 우승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가영은 노련했다. 한지은이 우승을 눈앞에 두고 세 이닝 연속 공타에 그치는 사이 2점씩 득점을 추가하면서 기어코 역전 우승을 이뤘다.

김가영은 “초반에 탐색전 할 때 서로 컨디션이 좋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다. 그게 느껴진다”며 “역시 결승전 뚜껑을 열어보니 서로 불편한 상황이 됐다. 경기 내용이 조금 더 수준 높았다면 좋았겠지만 살짝 위축되다 보니 경기력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우승으로 PBA(남성부)와 LPBA(여성부)를 통틀어 최초로 9승을 이룬 김가영은 우승 횟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게는 우승 횟수보다 실력으로 인정받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경기를 하는 게 더 중요하다. 포켓볼 선수 시절에도 기록에 연연하지는 않았다”며 “당연히 누구도 써내려 가지 못한 기록을 달성해서 기분은 정말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한 “연습량, 멘탈, 경험 중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이런 결과를 내진 못했을 것이다”며 “나도 경험 부족으로 불과 2~3년 전 결승서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모든 능력치를 갖춰야 중요한 순간에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이날 경기서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며 “지금도 얼떨떨하고 꿈만 같다. ‘기분좋은 정신없음’을 느끼고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김가영은 최근 두 대회 연속 우승을 이루는 등 슬럼프 없이 꾸준히 기량을 유지하는 비결은 ‘덜어내기’다. 그전에는 모든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과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중에는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거나 잘 모르는데 무리하게 시도한 방법도 있었다.

이제는 집중과 선택에 더 신경 쓴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샷이 뭔지 알게 되면서 거기에 맞는 길을 찾으려 한다. 3쿠션에서도 경험이 쌓이고 노련해졌음을 느끼고 있다.

김가영은 “처음에는 샷 선택지를 넓혔는데 너무 다양한 길을 보니까 복잡하더라”면서 “이제는 경기에서 쌓인 데이터와 경험을 기반으로 샷을 정리하고 있다. 많은 경기를 치렀기 때문에 내 데이터를 신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물론 김가영도 어려울 때가 있다. 이번 대회 결승전을 앞두고 하나카드 팀동료 무라트 나지 초클루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본인 경기를 치르면서 동시에 김가영의 경기를 직접 관전한 초클루는 기술적, 정신적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가영은 “결승전 전날 집에 가던 초클루를 붙잡고 1시간만 도와달라고 했고 흔쾌히 허락했다”며 “공 선택에 실수가 많았는데 내 경기를 보고 여러가지를 짚어줬다. 초클루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미 당구선수로서 이룰 것을 다 이뤘지만 김가영은 여전히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만족하고 안주하는 대신 계속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 뒤 거기에 맞춰 달려가려 한다. 단순히 기술적인 이유를 넘어 왜 김가영이 타고난 승부사인지 잘 보여준다.

최근에는 김가영을 우러러보고 그를 목표로 하는 후배들을 자주 본다. 이날 결승전에서 경기를 치른 한지은도 마찬가지다. 어린 후배들이 ‘제2의 김가영’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그에게 더 자극제가 된다.

“후배 선수들이 ‘김가영 선수처럼 잘하고 싶다’고 인터뷰하거나, 내게 찾아와 연습 방법을 물어볼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모든 면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겠다고 마음먹곤 합니다. 오늘 경기에서도 동기부여가 많이 됐어요. 한지은 선수가 정말 많이 발전했거든요.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게 보여요. 지난달 하노이 대회에선 용현지 선수와 함께 날 붙잡고 당구 질문을 한 시간 넘게 하더라구요. 한지은 선수가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까 참 궁금해요. 동시에 저도 현역 선수로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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