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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여정이었다. 사실상 10월5일 2위 자리를 놓고 겨룬 LG와 시즌 최종전 부터 그들의 가을은 시작됐다. 거의 한 달 가까운 기간 동안 매 경기 피를 말리는 승부를 펼쳤다.
두산이 있어 한국 프로야구의 올 가을은 좀 더 특별할 수 있었다. 늘 상대적인 전력은 뒤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두산이다. 하지만 특유의 뚝심과 하나 된 플레이는 상대 팀을 공포로 몰아 넣었다. 21세기 최강팀으로 자리매김 한 삼성 조차 두산의 기세에 눌려 벼랑 끝 까지 몰렸었다.
삼성 한 선수는 “1,2차전을 해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두산이 생각 보다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 놓았다.
아무리 좋은 경기를 해도 2위는 2위일 뿐이다. 포스트시즌의 흥미를 배가 시킨 최고의 활약을 펼친 두산이었지만 결국 조연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 신이 만들어 놓은, 두산 입장에선 서운할 수 밖에 없는 고약한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두산은 분명 귀중한 소득도 얻었다. 하나가 되면 얼마든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걸 선수들 스스로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어린 선수들에게 이 가을은 특별한 트레이닝이 됐다.
이번 포스트시즌서 정수빈과 함께 팀 야수들 중 막내로 합류한 허경민에게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가을로 남게 됐다. 그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기 때문이다.
허경민은 이원석에 이어 오재원까지 부상으로 이탈하자 한국시리즈 주전 3루수로 중용됐다. 그리고 만만치 않은 성적을 남겼다. 세 경기에 선발로 나섰으며 한국시리즈서 10타수 4안타의 고감도 타격감을 뽐냈다.
매 경기 결승이나 다름 없었던 한국시리즈서 한국 프로야구 최강인 삼성 마운드를 상대로 펼친 활약은 그에게 더 좋을 수 없는 참고서가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하나로 뭉친 팀 워크와 이기고 싶다는 열망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에너지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허경민은 “고작 두~세 경기 선발로 나갔을 뿐인데 너무 피곤하다. 몸이 성한데가 없는 기분이다. 경기가 끝나면 쓰러져 잠들기 바쁘다”며 “그냥 덕아웃에서 지켜보기만 할 땐 잘 몰랐는데 직접 뛰어보니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게 됐다. 그냥 체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부끄러운 듯 몇 마디를 덧붙였다. “우리 선배님들 정말 최고다. 어떻게 이런 걸 지금까지 버텨내고 있는지…. 그 전엔 손시헌 선배님이 롤 모델이었는데 이제 모든 선배님들이 다 자랑스럽고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새로운 야구를 알게 된 것 같다”고 한 뒤 자신의 왼쪽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며 “이놈의 심장아 제발 그만 좀 뛰어라”며 길게 숨을 내 쉬었다.
두산 야구가 그랬다. 한 경기에 대한 부담감과 체력적 손실이 페넌트레이스 경기의 2~3배에 달한다는 포스트시즌 경기를 다른 팀 보다 한달 가까이 더 치렀다. 모두 16경기를 치렀지만 연장 승부가 유독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18경기 이상을 뛴 것이나 다름 없었다.
정규 시즌을 치르느라 안 그래도 성한 곳이 없는 몸. 거듭된 포스트시즌 경기는 두산 선수들의 몸 상태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 아프지 않은 선수 한 명 없던 것이 두산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공 하나에 집중하며 마지막 까지 몸을 날렸다. 그 어느 팀 보다 많은 가을의 패배를 경험했던 두산 선수들이다.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른다. 이 멤버로 또 언제 다시 야구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한 번이라도 더 이기고 싶다”며 하나로 똘똘 뭉쳐 있었다.
아픈 선수들도 어떻게든 경기에 나서겠다는 강한 의지를 끝까지 보여줬다. 팀을 위한 걱정이 먼저였다. 옆구리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다 7차전에 선발 출장했던 이원석은 경기 전 “다들 너무 힘들 때 내가 다시 뛸 수 있어 다행이다. 다만 경기 감각이 떨어져 있어 폐가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라고 했었다. 그의 실수가 빌미가 돼 팀이 패했지만 그 장면을 손가락질 하기 어려웠던 이유다.
그런 투혼은 한국시리즈를 처음 경험한 막내 선수의 마음 속에도 깊고 진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오늘의 이 경험은 두산의 새로운 힘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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