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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남북정상회담] '쉬리'에서 '...동막골'까지, 분단영화 변천사

최은영 기자I 2007.10.02 13:52:23
▲ 영화 '쉬리'(사진 위), '웰컴투동막골'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남북한의 정상이 남한과 북한의 축구 친선경기를 위해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만난다. 운동장은 평화통일을 바라는 열기로 가득 찼다. 그러나 경기장을 둘러싼 주변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남북의 화해모드에 반기를 든 북한 특수8군단 소속 군인들이 경기장에 테러를 가하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국가일급비밀정보기관 OP의 정예요원 유중원(한석규 분)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은행나무 침대’를 통해 흥행감독으로 부상한 강제규 감독은 3년간의 준비 끝에 1999년 2월 ‘쉬리’라는 특이한 제목의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휴전선 인근의 청정지역에만 산다는 우리나라 토종 물고기 ‘쉬리’는 결국 전국 620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1998년 할리우드의 ‘타이타닉’이 세웠던 당시 국내 최고 흥행영화의 기록을 경신한다.

◇ ‘쉬리’가 보여준 새로운 분단의 지형

10월2일 노무현 대통령이 분단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육로를 통해 휴전선을 넘어 평양을 방문했다. 2000년 이후 두 번째로 이뤄지는 남북한 정상회담을 위해서다. 남과 북은 이렇게 분단의 오랜 대립과 갈등을 끝내고 평화와 협력을 통한 통일의 길로 또 한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곳은 다름 아닌 한국의 영화계다. 충무로는 ‘쉬리’의 흥행이후 분단문제를 중요 소재로 사용하며 북한과 분단문제에 대한 우리사회의 변화를 대변하거나 혹은 선도해왔다.

‘쉬리’는 북한 내부에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대립하며 남북화해와 통일에 대한 다른 시각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중적으로 인식시켰다. 이전까지의 한국영화와 달리 북한 내부를 묘사함에 있어 진일보한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북한 역시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하나의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의 남한 영화는 북한을 그리는데 있어서 정형화된 모습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반공이 국시였던 남한 사회의 분위기와 대결과 대립구도의 한반도에서는 그 이상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쉬리’는 이후 분단을 다룬 영화들에 중요한 단초를 제공했다. 그러나 정작 북한은 대남 선전 매체인 민민전방송을 통해 “ ‘쉬리’는 북의 특수요원들이 서울에 잠입, 남북회담 참석자들을 살해하고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내용을 담은 반북 모략 영화”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쉬리’에 이어 1999년 5월 장진감독은 ‘기막힌 사내들’에 이은 두 번째 영화 ‘간첩 리철진’을 선보이며 분단을 소재로 한 충무로의 분위기를 이어갔다. 북한의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남한의 슈퍼돼지를 가져오라는 임무를 맡은 간첩 리철진(유오성 분)은 남한내 고정간첩 오 선생(박인환 분)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 침투하지만 도착하자마자 택시 강도에게 공작금을 털리며 빈털터리가 된다. 장진 감독 특유의 재기발랄한 상황묘사와 대사가 돋보였던 ‘간첩 리철진’은 간첩의 눈을 통해 당시 우리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풍자하며 관객들에게 묘한 웃음을 안겼다.

▲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 2000년 첫 남북정상 회담과 '공동경비구역 JSA'

2000년 6월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은 평양에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연다. 남북간의 대결과 반목으로 점철된 반세기 분단 역사에 일대 전환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해 9월 박찬욱 감독은 남북한의 화해모드 속에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한반도의 분단을 상징하는 판문점 내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벌어진 남북 군인간의 총격사건을 추리극 형식으로 다룬 영화였다. 박상연의 소설 DMZ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공동경비구역 JSA’는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판문점 내 초소에서 남북한의 군인이 서로 왕래를 하며 우정을 나누다 파국으로 치닫는 내용으로 분단의 비극을 새롭게 바라봤다.

이병헌과 송강호 이영애 등 당대의 톱스타가 출연한 ‘공동경비구역 JSA'는 이후 시대의 분위기와 가장 절묘하게 어울린 영화로 평가받았다. 남북정상회담의 여파로 이어진 남북화해모드는 “위대한 수령 동지 만세!”를 외치는 북한 인민군 오경필 중사(송강호 분)를 인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박찬욱 감독을 스타감독으로 부상시킨 '공동경비구역 JSA'는 2000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수상을 시작으로 청룡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등 국내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다.

2001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도빌아시아영화제 대상 등 3개 부문 수상, 시애틀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영화제에서도 성과가 높았다. 전국 589만 관객을 동원한 ‘공동경비구역 JSA'의 흥행에 대해 한국언론재단의 최민재 미디어 연구원은 “6.15 남북공동선언이나 금강산 관광 등과 같은 시대적 환경변화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즉 남북의 시대적 변화가 영화의 내용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흥행이후 충무로는 분단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2001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기도 했던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 내용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피비린내가 넘쳤던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비극적인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에는 북한 최고지도자의 외동딸 지은(김현수 분)이 평양예술단의 수석무용수로 남한에 왔다가 서울에 남아 벌이는 좌충우돌을 담은 ‘휘파람 공주’가 개봉했다. ‘휘파람 공주’는 남북의 화해모드를 저지하고자 CIA요원이 지은을 암살하려 한다는 파격적인 설정이 덧붙여졌다. 물론 영화는 어설픈 완성도로 인해 실패를 맛본다.

이와 유사한 설정의 ‘남남북녀’도 2003년 개봉됐다. 지금은 영화계 톱스타가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어설픈 연기력의 청춘스타였던 조인성이 미스코리아 출신의 김사랑과 호흡을 맞춘 ‘남남북녀’는 남과 북의 대학생 대표들이 고구려 상통고분 연변 발굴단에 참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뤘다. 이런 남북간의 이질적인 문화나 인물이 충돌해 벌어지는 코미디를 다룬 영화는 정준호와 공형진이 주연으로 출연한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거쳐 남북의 군인들이 조선시대로 가서 청년 이순신을 도와준다는 ‘천군’(2005년) 그리고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나기 위한 실향민의 에피소드를 다룬 ‘간 큰 가족’(2005년)으로 이어진다. 안판석 감독의 ‘국경의 남쪽’(2006)은 탈북자를 소재로 해 분단영화의 지평을 넓혔다.

▲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 ‘태극기 휘날리며’와 ‘웰컴 투 동막골’이 보여준 분단의 상처와 극복

2003년 2월 강제규 감독은 ‘쉬리’이후 약 5년간의 침묵을 깨고 장동건 원빈 주연의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충무로에 복귀한다. 6.25 동란 와중에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된 형제를 통해 한국전쟁의 비극을 정면에서 다룬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영화의 신기원을 개척한 영화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남과 북 한쪽에 크게 치우치지 않은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으로 한국전쟁을 다뤄 일부 보수계층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국영화 최초로 1천만 관객을 돌파한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가 가지고 있던 흥행기록을 경신한 ‘태극기 휘날리며’는 현재까지 한국 상업영화가 분단의 전경을 담아낼 수 있는 가장 큰 폭을 보여줬다.

800만 관객을 동원하며 2005년 최고의 흥행작으로 기록된 박광현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 역시 분단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의 변화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한국전쟁 당시 전쟁의 포화가 미치지 못한 강원도 두메산간의 동막골에 국군과 인민군 그리고 연합군의 탈영병이 모인다. 이들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나 차츰 서로를 이해하고 동막골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다. 이처럼 ‘웰컴 투 동막골’의 줄거리는 반세기가 지난 우리 시대 분단의 상처가 어떻게 아물면 좋을지를 보여줬고 800만 관객은 이에 동감했다.

◇ 2007년 남북정상회담은 훗날 어떻게 영화화 될까

북한의 핵문제로 인해 6자회담이 어려움에 봉착하며 한반도의 평화분위기는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때보다 경색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영화계 역시 2006년을 기점으로 남북분단 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의 제작이 이전보다 뚜렷하게 감소했다. 이는 ‘쉬리’ 이후 한국 영화가 여러 가지 장르와 화법으로 분단 문제를 어느 정도 소화했기 때문으로도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영화계는 분단이 아닌 북한과의 직간접적인 협력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올해 6월 개봉된 장윤현 감독과 송혜교 주연의 ‘황진이’는 그런 측면에서 충무로의 이정표 같은 역할을 했다. 16세기 조선의 최고 기생이었던 황진이의 일대기를 담은 ‘황진이’의 원작은 북한 소설가 홍석중의 동명소설이었기 때문이다. '황진이' 제작팀은 남한의 영화인으로서는 최초로 분단 60여년 만에 북한 금강산의 겨울 비경을 영화에 담아낼 수 있었다.

금번 제 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의 정세가 어떻게 달라질지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다만 분단의 상처를 극복하고 우리 민족이 화해와 협력으로 가는 길에 도움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영화계는 또 다시 남북의 달라진 환경과 변화를 영화 속에 담아낼 것이다. 그 방향이 ‘황진이’의 예에서 보듯 직접적인 제작과 협력 부분으로 확대될지 아니면 소재로만 작용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한국영화계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역사적인 만남을 외면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영화 속에 담아낼 것은 확실하다.
 
영화는 종종 자신보다 더 극적인 현실을 질투해 그것을 오롯이 자신만의 모습으로 재창조 낸다. 훗날 2007년 남북정상회담이 어떻게 영화 속에서 변주될지 기대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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