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계약’ 김진민PD “클리셰의 힘은 강하다”(인터뷰③)

김윤지 기자I 2016.04.22 07:00:00
MBC 제공
[이데일리 스타in 김윤지 기자](인터뷰②에 이어)―뛰어난 영상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드라마가 먹힌 건, 이진석 촬영 감독의 힘이 크다. 그가 아니면 이 정도의 화면이 나오지 않았을 거다. 아시아 최고라고 써줬으면 좋겠다. 본인이 한 이야기인데, 세계 최고가 아닌 건 할리우드가 있어서 안 된다고 하더라. (웃음) 9회에도 잠깐 등장한다.

―장소 섭외도 귀신같다.

―섭외를 맡은 김신호 실장의 미적 감각이 뛰어나다. 이진석 감독의 탐미적인 시선과 잘 맞아 떨어진다. 둘 다 남다른 데가 있다.

―디테일이 좋다. 12회에서 이서진과 유이가 영화관 데이트를 한다. 유이가 병을 숨긴 채 행복한 척 웃는 장면에서 ‘재미있는 척해’라는 영화 속 대사가 화면에 잡힌다.

△영화는 정유경 작가가 지정해줬다. 알아보니 영화 수입사에 지인이 있더라. 다행히 빨리 섭외가 됐다. 웃기는 대목을 틀어달라고 했다. 그 장면 외에도 다른 장면이 있었을 텐데, 편집자가 우리 상황과 비슷한 대사를 찾아냈다. 의도했다기 보다 결과적으로 운이 좋았던 거다. 이 드라마는 여러가지로 운이 좋았다.

―유이가 홀로 아파서 괴로워하는 신에서 앵글이 세로가 된다. 두통으로 고통 받는 유이의 심정이 잘 드러낸 장면이었다.

△이진석 감독이 한 거다. 이 감독이 만들어 온 것을 본 뒤 의견을 내면서 작업을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쫓아가고 있다. 드라마의 리듬과 호흡에 맞춰 이 감독이 맞는 걸 제시해주고 있다.

―꽃다발을 든 이서진이 유이, 신린아와 부둥켜안고 밝게 미소 짓는 14부 엔딩이 참 예뻤다.

△우리끼리는 ‘(드라마가)끝났다’고 했다. 남은 2회는 에필로그라고. 이 감독과 함께 “촌스럽게 찍어보자”라는 마음이었다. (웃음)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에 슬로우가 나오는데, 슬로우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자는 마음이었다. 이서진도 참 잘 해줬다.

―혜수가 악화되는 병세를 숨기려고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 유이가 실제로 자신의 머리를 잘라 화제가 됐다.

△유이에게 던졌다. 가발을 쓸지, 머리를 진짜 자를지 물어봤다. 하루 시간을 줄 테니 생각해보라고 했다. 얼마나 갈등이 있었겠나. 다른 작품도 해야하고, CF도 걸려 있고, 한창 예쁜 나이고. 근데 다음날 하겠다고 했다. 고마웠다.

―해당 장면 촬영 현장을 담은 메이킹 영상을 보면 드라마 현장 분위기는 참 밝더라. 유이에게 ‘(역할에)빠지지 말랬지’라고 말하더라.

△이런 드라마를 찍을 때 분위기가 어두우면 힘들다. 캐릭터에 빠지면 슬픔이 진해지는데, 슬픔이 시청자에게 전해지려면 일상이 있을 때 가능하다. 시종일관 슬프면 청승이다. 밝음이 있어야 어두움이 있듯, 일상이 있어야 슬픔도 있는 거다.

―‘결혼계약’은 클리셰를 비틀면서 쾌감을 준다는 평가도 있다.

△작가의 힘이다. 처음에 빤한 드라마라고 해서 답답했다. 잘 찾아보면 빤한 게 없다. 빤하다고 하지만, 정작 뭐가 그런지 설명은 없었다. 클리셰의 힘은 굉장히 강하다. 거기서 새로운 것이 나올 때 명품이라고 한다. 익숙하지만 또 새로운 것을 명품이라고 하지 않나. ‘명품 대본’인 셈이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잘 쓴 대본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이 작품을 시작했다.

―이 드라마는 극악무도한 악역이 없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결혼계약‘은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한 거다. 돈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있으면 좋고, 많으면 좋다는 식이다. 진짜 그런지 다들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고전적인 이야기이지만, 물질과 행복이 비례하느냐는 질문이다. 전반적인 바탕에 이 요소를 깔아놨다. 재미있게 보셔도 좋지만, 한 번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물질주의나 이런 어려운 말 말고 돈, 삶, 사랑,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드라마로 풀어낸 거다.

김PD는 다음 촬영 장소로 발을 옮겼다. 짧은 인터뷰가 그렇게 끝났다. 10분 후 전화가 울려왔다. 깜빡한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오만과 편견’부터 현솔잎PD와 같이 하고 있다. 눈이 좋다. 신린아 어린이를 데려왔다. 능력있는 친구다. 내년에 입봉을 할 테니 기억해주길 바란다. 편집과 음악 감독도 마찬가지다. 믿고 맡기는 편인데, 냉정한 시선으로 잘해줬다.

마지막까지 스태프들에게 공을 돌리는 김PD에게 “다 스태프들이 만들었나”라고 물었더니 그는 큰 소리로 웃었다. 화기애애한 촬영장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결혼계약’은 그 자체로 성공한 드라마였지만, 구성원들 역시 행복한 드라마였다. 그 중심에는 노련함과 유연함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김진민PD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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