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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올해 선 보인 한국 공포영화 중 이용주 감독의 데뷔작 '불신지옥'은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광신과 믿음, 그리고 개인의 욕망을 소재로 한 '불신지옥'의 공포는 감각적이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의 가슴을 서서히 압박해와서다. 이제 갓 데뷔한 이용주 감독은 치밀한 화면구성과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로 관객들에게 색다른 공포영화의 체험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런 영화의 장점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는 배우들의 연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신들린 동생 소진(심은경 분)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다 자신도 빙의가 되는 주인공 희진 역의 남상미는 그런 면에서 '불신지옥'의 영화적 성패를 좌우하는 키를 쥐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2002년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교 앞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약 얼짱스타로 화제가 되어 연예계에 데뷔한 남상미는 '불신지옥'이 배우로서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었다고 한다.
"그간 발랄하고 씩씩한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어요. '달콤한 스파이'나 '식객' 등에서 제 모습은 제 실제 모습과도 비슷해 연기하기가 크게 어렵지는 않았죠."
하지만 '불신지옥'의 희진은 이전까지 맡아왔던 캐릭터와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가장 가까운 피붙이인 엄마까지 의심하며 스스로 붕괴되어가는 희진의 모습은 단순히 비명만 지르면 되는 평범한(?) 공포영화의 주인공과는 확실히 다른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이번 캐릭터를 통해 감정을 폭발하는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새로웠어요. 욕설도 해보고 머리채를 잡고 싸워보기도 하는 등 내 안에 무언가를 다 끄집어낸다는 느낌이었어요"
희진은 실종된 동생을 찾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지만 오히려 여러 가지로 의심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희진은 주변인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자신 역시 이유를 모를 공포로 내면이 잠식되어간다.
"희진은 스스로 믿고 있던 가치들이 무너지면서 스스로에게 공포를 느끼는 인물이에요. 그러면서도 동생에 대한 애정으로 여러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가죠. 그런 희진의 심리적인 움직임과 감정들이 저에게는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희진의 그 불안한 심리적 움직임과 감정들은 영화 ‘불신지옥’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공포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남상미는 이러한 희진의 모습을 통해 이전의 자신이 맡았던 ‘발랄하고 명랑한 20대 여성 캐릭터’의 틀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남상미가 바라는 연기자의 로드맵 중 하나였다.
“어느 날 갑자기 파격적으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한 계단씩 차곡차곡 변화하고 싶어요. 그래서 삼십대 중반이 넘어가면 성숙미와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배우가 제 꿈이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불신지옥’의 희진은 제가 꼭 해보고 싶었던 캐릭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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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촬영하며 가장 아쉬웠전 점을 물었더니 엉뚱하게도 “너무 겁이 없어서 귀신 같은 것을 못 본 것이 가장 아쉽다"고 한다. 공포영화 촬영현장에서는 주연배우가 귀신같은 걸 봐야 흥행이 잘 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란다.
"영화가 흥행이 잘 되면 정말 좋겠어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관객들의 선택이니 배우로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죠. 다만 이 작품이 영화사 아침의 고 정승혜 대표님의 마지막 작품이니만큼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겠는데...잘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