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송 "US오픈에서 우승해 USGA 주최 전 대회 석권이 꿈"

주영로 기자I 2018.12.19 07:25:56

지난 4월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연장 끝에 준우승
첫 우승 놓쳤지으나 응원해준 모든 팬들께 감사
당시 외할아버지 위독 소식에 경기 내내 슬픔 잠겨
2013~2014 시드 탈락 아픔 이겨낸 뒤 자신감 찾아

제니퍼 송.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스타in 주영로 기자] 지난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시즌 첫 메이저 대회 ANA 인스퍼레이션 마지막 날. 프로 8년 차 제니퍼 송(29·한국이름 송민영)은 첫 우승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 페닐라 린드베리(스웨덴), 박인비(30)와 함께 연장에 돌입했다. 2차 연장에서 기회가 왔다. 버디 퍼트에 성공하면 우승트로피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그러나 퍼트한 공이 홀을 빗나가면서 우승을 확정 짓지 못했다. 승부는 다시 3차 연장으로 이어졌고, 제니퍼 송은 혼자 파를 기록해 가장 먼저 탈락했다. 뒤이어 계속된 린드베리와 박인비의 연장 승부는 다음날까지 이어졌고, 1박2일 동안 계속된 연장 끝에 린드베리가 우승했다.

시즌을 끝내고 귀국해 충남 조치원에서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해온 제니퍼 송은 17일 미국으로 떠나기 전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그날을 다시 돌아봤다. 그는 “많이 아쉬웠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리더니 “2차 연장에서 나름 경사를 잘 읽었고 퍼트도 그대로 잘했는데 들어가지 않았다. 돌아보니 ‘이게 아니면 안 된다’는 더 간절한 마음으로 과감하게 퍼트하지 못했던 게 아쉬움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그날 제니퍼 송은 온전히 경기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대회를 앞두고 그에겐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어려서부터 가장 많이 따랐던 외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회 기간 내내 외할아버지 생각뿐이었고, 빨리 경기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 외할아버지를 뵙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경기에 집중하고 싶어도 감정적으로 그럴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3차 연장에서 탈락한 제니퍼 송은 그날 밤 귀국행 비행기를 탔고, 외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뵐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제니퍼 송은 감사한 마음을 더 많이 느꼈다. 귀국한 그에겐 여기저기서 응원의 문자가 쏟아졌다. 그는 “돌아보니 ‘더 집중해서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했다”면서 “그날 이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 큰 힘을 얻었다”고 아쉬움을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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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송이 골프채를 처음 잡은 건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갔을 때다. 부친 송무석 씨(홍익대 조선해양과 교수)가 1998년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에서 연구생활을 할 때 연습장을 따라갔다가 골프를 배웠다. 우연히 배운 골프였지만, 꽤 소질을 보였다. 제니퍼 송은 “1년 반쯤 배우고 동네에서 열린 골프대회에 나갔다가 얼떨결에 우승했다”며 “그때 ‘내가 소질이 있나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연구 생활이 끝나면서 귀국해 대전에서 학교에 다녔다. 고교 시절엔 태극마크를 달고 뛸 정도로 실력이 급성장했다. 2008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 시절엔 2009년 미국골프협회(USGA) 여자 아마추어 퍼블릭 링크스 챔피언십과 US여자아마추어선수권대회를 제패하며 아마추어 최강자로 떠올랐다. USGA가 주최하는 두 대회를 한 해 동시에 석권한 건 1988년 재미교포 펄신 이후 제니퍼 송이 두 번째였다. 학업보다 투어 활동에 더 관심을 보였던 제니퍼 송은 2학년을 마치고 휴학 후 프로 무대에 뛰었다.

화려한 아마추어 시절 보냈기에 그에게 거는 기대도 컸다. 그러나 제니퍼 송에게 찾아온 건 영광이 아닌 시련이었다. 프로 전향 첫해 LPGA 2부 투어 데뷔전인 테이트앤라일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대회 최저타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그 덕에 상금랭킹 2위로 LPGA 정규 투어 출전권을 따냈다. 하지만 이후 시련이 찾아왔다. 2011년 데뷔했지만, 우승과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2013년과 2014년에는 시드마저 잃는 최악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는 하루가 우울한 날의 연속이었다”면서 “2013년에 이어 2014년에도 성적이 부진할 때는 ‘또 떨어지면 다른 길을 찾을까’라는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2년 동안의 시간은 말 그대로 ‘바닥’이었다.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던 그는 월요예선(먼데이)까지 나가야 했고, 주변의 소리에 더 크게 흔들렸다. 그때 제니퍼 송을 버티게 했던 힘은 ‘기본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초심이었다.

제니퍼 송은 “그때 들었던 생각은 ‘기본부터 다시 시작하자’였다”면서 “‘나는 초보자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무작정 연습만 했다”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당시 자신의 모습을 ‘공을 치는 기계’에 비유했다.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2013년 상금랭킹 108위, 2014년 82위까지 추락했다가 2015년 67위, 2016년 46위, 2017년 48위로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올해 33위(62만6263달러)로 데뷔 이후 최고의 성적을 냈다. 성적보다 더 소중했던 건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제니퍼 송은 “힘들었던 시기를 극복하고 난 후 조금은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다”면서 “이제는 그 어떤 힘든 상황이 와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4월 ANA인스퍼레이션 준우승은 프로 데뷔 이후 최고 성적이었다. 안타깝게도 우승을 놓쳤지만, 그는 “내년엔 그동안 이루지 못한 우승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짧은 휴식을 끝낸 제니퍼 송은 동계훈련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2월 초 태국에서 열리는 혼다 타일랜드에서 시즌 첫 대회를 치를 예정인 그는 약 6주 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제니퍼 송은 “아마추어 시절에 USGA(미국골프협회)에서 주최하는 2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경험이 있다”면서 “프로 대회에서 USGA가 주최하는 대회는 ‘US여자오픈’ 딱 하나다. 그동안 이루지 못한 우승을 그 대회에서 이뤄 USGA가 주최하는 3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해보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지난 10월 인천 스카이72골프클럽에서 열린 LPGA 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제니퍼 송이 경기 중 환하게 웃으며 페어웨이를 걸어가고 있다. (사진=KEB하나은행 챔피언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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