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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 이데일리 SPN 송지훈 기자] '청출어람 이청어람(靑出於藍 而靑於藍)이라는 말이 있다. '푸른 색은 쪽에서 나왔으나,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 또는 후발주자가 스승이나 원조보다 나음을 일컫는 말이다.
K리그 15번째 구단으로 창단한 강원FC(감독 최순호)의 경우가 그렇다. 일천한 역사와 부족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고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K리그 흥행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까닭이다.
◇졌지만 웃었다
강원은 지난 7일 오후3시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열린 FC서울(감독 넬로 빙가다)과의 경기서 0-3으로 완패했다.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치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골 결정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후반에만 3골을 내줘 홈에서 아쉬운 패배를 허용했다.
하지만 경기 종료 직후 마주친 강원 구단 관계자들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비록 스코어에서는 일방적으로 밀렸지만, 올 시즌 홈 개막전이기도 했던 이 경기서 마케팅의 희망을 발견한 까닭이다.
당일 오전부터 함박눈이 쉼 없이 내린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이날 9,828명의 축구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2만1700명을 수용하는 강릉종합운동장의 절반 가량이 팬들로 메워졌고, 이들은 차양막도 없는 관중석에서 눈을 맞으며 양 팀 선수들을 응원했다. 기상 조건이 흥행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K리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그래서 더욱 특별한 장면이었다.
◇스킨십, 그리고 발상전환
당초 프로축구연맹은 기상 악화를 고려해 경기의 취소를 신중히 검토했다. 하지만 '눈이 올 것'이라는 기상 예보에도 불구하고 강원 팬들이 일찌감치 관중석 대부분의 표를 예매하는 등 적극성을 보인 점을 감안해 경기를 강행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강원과 서울이 '눈 밭 혈투'를 벌이게 된 배경이다.
경기 후 만난 김원동 강원 사장은 "올 시즌 연간회원권 판매량이 1만2000장을 돌파했다"며 환히 웃었다. 첫 시즌이던 지난해 판매량(2500장)을 5배 가까이 초과한 결과이자, 당초 목표치로 설정한 8000장을 한참 뛰어넘은 수치다. 아울러 김 사장은 "연간 입장 수입 10억원 돌파를 기대하고 있다"고도 했다. K리그 무대에서 입장 수입 10억원은 월드컵경기장을 갖춘 수도권 인기 구단에서나 기대해볼 수 있는 '꿈의 액수'다.
K리그 막내이자 소규모 경기장을 활용하는 강원이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둔 배경에는 특유의 '스킨십 마케팅'이 큰 몫을 했다. 지난해 강원은 구단과 선수들이 먼저 팬들에게 다가서는 적극적인 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사랑의 집짓기 참가, 자원봉사, 지역 조기축구회와의 친선경기 등을 통해 선수와 팬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자 애썼고, 소통을 위해 노력했다.
'발상전환 마케팅' 또한 흥행에 한 몫 했다. 강원은 티켓의 희소성과 가치를 높여 '축구 관람'을 고급 문화로 정착시킨다는 목표를 정하고, '공짜표 및 가격 할인 없애기'를 최우선과제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올 시즌 강원은 지난해 도민주주 구매자에게 제공했던 입장권 50% 할인 혜택을 과감히 없앴다. 아울러 시즌권의 경우에도 VIP권의 가격을 20만원으로 책정하는 등 고가(高價) 정책을 폈다. 관중 유치를 위해 걸핏하면 '할인' 카드를 꺼내들고, 초대권을 남발하는 몇몇 구단들과 구분되는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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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막내, EPL을 겨냥한다
강원은 전체 표 2만1700장 중 80%인 1만7000장을 시즌권으로 판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두 번째 시즌에 일찌감치 1만2000장을 팔았으니 지향점이 그리 멀진 않다. 이를 위해 더욱 다채롭고 적극적인 마케팅 방식을 도입해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김원동 사장은 "궁극적으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티켓 세일즈 방식을 K리그 무대에서 적용해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관중 1인당 티켓 구매 단가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한편, 경기장을 찾지 않은 시즌권 구매자의 빈 자리까지 메우기 위해 전체 시즌권 판매량의 120%를 미리 팔겠다는 것이다.
노력과 함께 하는 도전은 언제나 아름답다. 신생구단으로서의 불리함을 딛고 K리그 마케팅의 성공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는 강원의 도전은 언제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지속될까. 프로축구 관계자들은 지금 따뜻한 시선으로 'K리그 막내'의 발걸음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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