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김원형은 그리 만만하게 볼 수 있는 투수가 아니다. 올시즌 3승(1패)을 더하며 통산 125승을 거둔 그는 한국프로야구 사상 7번째로 많은 승리를 거둔 투수다.
그의 밑으로 김시진(전 현대 감독.124승) 정민태(KIA.124승) 최동원(한화 2군감독. 103승) 등이 있으며 1승만 더하면 김용수(LG 2군 투수코치) 조계현(삼성 투수코치
)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5위에 오르게 된다.
1991년 데뷔해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마운드를 지켜내며 쌓은 엄청난 기록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달인'이라 불리울 자격을 갖고 있다. 그는 "'평범한 에이스로 사는 법'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쓰겠다"는 말을 한 뒤에야 비로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인터뷰를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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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형은 '파이터'형 투수다. 곱상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매우 빠르고 공격적인 투구 스타일을 갖고 있다.
김원형이 프로야구에 첫 발을 디딜때만 해도 그와 같은 스타일을 별반 환영을 받지 못했다.
이전 세대가 하던 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저런 지적이 쏟아졌다.
그러나 김원형은 버텼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고집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공을 오래 갖고 있어라
김원형은 투구 템포가 매우 빠르다. 한참때는 "공 잡으면 바로 던진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다.
첫번째 지적사항이었다. 결과가 좋을 때야 상관없지만 안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땐 가장 먼저 질책이 쏟아졌다. "일부러라도 시간을 끌며 천천히 좀 던져라."
김원형은 이에 대해 "성격상 오래 끄는 것이 맞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야수의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내 리듬이 괜찮다면 빠른 템포를 가져가는 것이 야수의 수비에 도움이 된다. 간혹 주자가 나가고 하면 조절을 해야겠지만 어떤 야수도 수비하는데 오래 서 있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에선 버려라
볼카운트 2-0이 되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 한가지. 포수가 엉덩이를 살짝 들고 서면 투수는 타자의 눈 높이로 공을 던진다. 매우 오래 전부터, 어쩌면 요즘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관습(?)이다.
그러나 김원형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요즘도 좀 남아있긴 하지만 예전엔 기계적으로 공을 빼야 했다. 물론 공을 빼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타자가 눈 높이로 오는 공에 습관적으로 스윙이 나오거나 다음 피칭의 볼 배합상 던져야 할 타이밍도 있다. 그러나 아무 이유없이 빼는건 아니다. 차라리 같은 볼을 던지더라도 몸쪽 빠른 공을 스트라이크존에서 하나쯤 빼는 것이 낫다. 타자에게 '아, 이쪽도 공략하는구나'하는 생각이라도 심어줄 수 있지 않나."
투수코치들은 물론 보는 사람 입장에서 2-0에서 안타를 맞는 것은 매우 한심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 습관적으로 공을 빼는 것이 자리를 잡았는지도 모른다. 성공 가능성 보다는 실패했을때 쏟아질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말이다.
김원형은 "볼을 던지더라도 도망가듯 유인하는 것 보다는 투수가 가장 자신있게 던질 수 있는 공을 선택하는 것이 결국은 성공률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쉬워서 어려운 투수
SK 선수들이 김원형에게 장난을 걸고 싶을때 꼭 하는 말이 있다. "안타 못친 타자 있으면 원형이형한테 가라고 해라."
시즌은 물론 데뷔 이후 첫 안타를 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올해만도 김재환(두산) 김남형(우리) 등에게 첫 안타를 맞았다. 가장 인상적인 한방은 데뷔 첫 타석에서 대타 끝내기 만루홈런을 때린 송원국(두산)과의 승부(2001년)였다.
김원형은 "내 공이 이제 만만해졌기 때문"이라며 웃어보이더니 자세를 고쳐 앉아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안타를 칠 수 있지만 또 쉽게 아웃 될 수 있는 투수가 되려 노력하고 있다."
상대를 압도할만한 구위는 이제 기대하기 어렵지만 타자와 수싸움을 통해 이겨낼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상대의 방심은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
김원형은 "특별한 비결은 없다. 단 초구부터 집중하며 승부구를 던지려 한다. 공 하나도 허투루 던질 수 없다. 크게 이기거나 지는 상황에 올라가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말했다.
문득 인터뷰를 하기 전 SK 한 야수가 한 말이 떠올랐다. "원형이 형 올라오면 정신이 버쩍 들어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절대 대충 던지는 법이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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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수와 교감
김원형은 에이스 앞에 '비운'이 더 어울리는 투수였다. 쌍방울을 거쳐 SK까지, 강팀 보다는 약팀에서 뛴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이다.
잘 던지고도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패전투수가 되는 것? 그에겐 매우 흔한 일이었다. 좀 더 강팀에 있었다면 그는 통산 승수 부문에서 지금보다 훨씬 높은 곳에 올라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원형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운이 좋았다고 했다. "그런 팀에 있었으니까 지금의 나도 있는 거라 생각한다. 쌍방울서 뛰었으니 첫해부터 계속 선발을 할 수 있었지 않았겠나. 물론 내가 잘 던지고 뒤에 역전당하고 하면 순간 울컥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금세 잊은 것 같다. 단, 내 1승 보다는 팀이 이기는게 더 중요했다. 내가 나가는 경기에선 팀이 꼭 이기기를 바랬고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 누굴 원망해 본 적은 없다."
투수와 야수는 같은 팀에 있어도 교감이 어려운 사이다. 스케줄이 다르기 때문에 부딪힐 일도 거의 없다.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경기는 다르다. 마음이 통해야 더 강해질 수 있다. 투수들과 야수가 서로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팀은 절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어쩌면 김원형은 약하디 약한 팀, 그것도 찢어지게 가난했던 팀의 에이스로 뛰며 그 사실을 몸으로 배웠는지도 모른다. 어떤 야수를 붙잡고 물어도 "원형이형 올라오면 잘하고 싶다"는 대답이 나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단순히 착하고 잘해줘서가 아니다.
공 던지는 스타일이며 넓은 마음까지 두루 두루 야수와 소통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인터뷰가 있었던 10일, 김원형은 중간계투로 마운드에 올라 삼성 진갑용에게 결정적 스리런 홈런을 맞았고 팀은 졌다.
인터뷰 전 웨이트 트레이닝 시간에 김원형은 야수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 미안했다. 나 좀 덜 미안하게 내일 좀 이겨주라."
어떤 의도도 담겨 있지 않은 말이었다. 의도가 있더라도 팀의 최고참급인 선수가 쉽게 하기 힘든 말이다. 그러나 김원형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 타고나지 못한자가 사는 법
'김원형'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커브다. 어떻게 하면 잘 던질 수 있을까. 그의 답은 허무했다.
"잘 모르겠다. 초등학교 6학년땐가 리틀 야구에도 커브를 던질 수 있게 해서 던졌다. 누구한테 배운 기억도 없다. 그냥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게 던지려다보니 그렇게 됐다. 유명한 투수코치들이 와서 커브 던지는 법을 들어보면 나랑도 좀 다른 것 같다. 나도 테이크백을 할때부터 팔을 좀 꼬면서 나오는데 처음 배우는 투수가 그런 방식으로 하면 손에서 빠질 수 있다."
그러면서 '타고난 재주'에 대해 말했다. "원래 잘 던질 수 있는 공을 타고나는게 아닐까 싶다. 난 커브를 잘 던지게 태어난거고 누군가는 슬라이더, 누군가는 포크볼 이렇게 말이다. 변화구를 모두 잘 던지는 투수는 거의 없다."
이어 "진짜 하늘이 내린 재주는 150km를 넘게 던질 수 있는 능력 아닐까. 결국 타고난 선수들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노력만으로는 그들을 이기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자신의 표현대로라면)평범한 능력을 가졌다고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원형은 부단히 자신을 갈고 닦으며 높은 곳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땀을 흘렸다.
"내가 잘한게 있다면 꾸준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번도 시키는 훈련을 게을리해 본 적이 없다. 젊었을때나 나이를 들어서도 꾀를 부려본 적이 없다. 예습 복습 잘 하고 학과 수업에 충실한 학생처럼. 쳇바퀴 돌듯 똑같은 삶은 반복이었지만 지겹다고 도망가본 적은 없다. 오래 야구 하는 선수들이 다 그렇듯 술도 즐기지 않았고.... 나는 달인이라고 불릴 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나 정도의 재능으로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 야구를 하기 위해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쉬지 않고 노력했기 때문이란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김원형은 스무살때 몸무게에서 고작 4kg이 늘어난 76kg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이제 우리 나이로 마흔을 바라보는 것이 가깝다. 스무살때 입은 바지는 허벅지부터 들어가지 않는 아픔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그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다.
▲ 아쉬움
김원형은 지난 17년 동안 10승을 넘긴 것이 단 3차례(93,98,05)에 불과하다. 더 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면 아쉬운 일들이 많다. 욕심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투수는 조금씩 부상을 갖고 있다. 투수만 아는 고통이다. 병원에 가보면 별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투수는 아플 때가 있다. 난 그때마다 포기했다. 더 못던지게 될까봐 두려웠다. 물론 참기 힘들만큼 아팠다. 하지만 '정말 못 참을 정도였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반대로 그 고비를 넘겼다면 어땠을까. 주위를 보면 그 고통을 참고 넘긴 선수들이 꽤 있다. 그 이후 더 강해지는 모습을 보면 부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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