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택현의 '최소 볼넷' 행진을 아시나요

정철우 기자I 2013.06.22 10:49:46
류택현.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LG트윈스가 잘 나가고 있다. 지난 5월21일 이후 무려 20승6패라는 놀라운 승률을 거두며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신.구 조화가 잘 이뤄지고 있는 타선과 예상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선발 및 불펜 마운드. 최근의 LG에선 단점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LG 불펜이 정말 완벽한 구성인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렵다. 일단 불펜 핵심 요원인 유원상이 아직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빈 자리를 이렇게 저렇게 메워가고는 있지만 과부하가 언제 걸려도 이상하지 않다. 그만큼 유원상의 빈 자리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빈 자리가 왜 아직까지 티가 나지 않았는지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동현을 비롯한 다른 투수들이 조금씩 짐을 나누고 있는 덕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최고참 류택현(41)이 서 있다.

류택현은 올시즌 25경기에 등판해 13.1이닝을 던지며 평균 자책점 3.38을 기록중이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현재 활약중인 좌완 불펜 투수들의 평균적인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좀 더 숫자를 파헤쳐 보면 그의 등판이 갖고 있는 무게감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짧으면 한 타자, 길어야 1이닝을 소화하고 있지만 그가 잡아내고 있는 아웃 카운트는 LG의 보다 많은 승리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우선 류택현은 현재 이닝 당 출루 허용률이 0.98에 불과하다. 올시즌 가장 빼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외국인 투수 크리스 세든(SK)가 1.08을 기록중임을 감안하면 류택현의 짠물 피칭이 어떤 수준인지 잘 알 수 있다.

또 그는 아직까지 단 한번도 제대로 된 볼넷을 내주지 않았다. 올시즌 기록 된 볼넷은 1개. 지난 13일 한화전서 내준 것이 유일하다. 그 외 볼넷은 고의사구 지시로 한명을 거른 것 뿐이다.

류택현은 이제 불같은 광속구로 상대를 윽박지를 수 있는 유형의 투수는 아니다. 안정된 제구력과 두 수 앞을 내다보는 머리싸움으로 타자를 무력화 시키는 유형의 투수다. 자칫 고민의 크기가 커질 수 있는 스타일이다. 실제 이전의 류택현은 볼넷이 적은 투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올 시즌의 류택현은 다르다. 상대를 압도하는 공이 아니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도망가지 않고 승부를 걸어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면 얼마든지 타자들과 승부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그가 등장하는 순간은 팀의 승.패가 갈리는 절체 절명의 상황이다. 그 타자를 막는 것과 막지 못하는 것은 경기 흐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볼넷이 가장 무의미하고 부담되는 결과인 이유다. 류택현은 5월 이후 상대 한 34명 중 단 5명(4피안타 1볼넷)에게만 출루를 허용했다

류택현은 “지난해 플레잉 코치를 하며 또 한번 야구에 눈을 뜰 수 있었다. 객관적으로 투수를 판단해야 하는 입장에 서 보니 마운드에 섰을 때의 마음가짐이 또 달라졌다. 공이 갑자기 좋아진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는 것이 변화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의 나이 우리 나이로 마흔 셋. 야구 선수로는 ‘노인’에 가까운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무언가를 배우고 있으며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차례 고비를 맞고 다시 선 마운드라는 점에서 그의 도약은 더욱 놀랍다. 류택현은 지난 4월, 평균 자책점이 11.25까지 치솟았다. 결국 2군행 통보를 받았다. 모두들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최다 경기 출장 기록을 세우며 모아졌던 스포트 라이트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머지 않아 은퇴 소식이 전해질 거라 모두들 예상했다.

그러나 류택현은 포기하지 않았고 기어코 다시 마운드에 섰다. 그의 존재감이 팀 내에서 더욱 커졌음은 물론이다.

류택현은 시즌 초,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프로야구가 6개월의 스포츠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은 2개월이라 생각한다. 주축 선수들이 지치거나 다쳤을 때를 메워주는 시간을 다 더해보면 그렇다. 우리가 그 2개월을 어떻게 메워주느냐에 따라 팀 성적이 달라질 수 있다.”

그저 말로 끝난 위로였다면 그 파장이 지금처럼 진하고 깊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히며 살아남는 법을 마운드에서 직접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달라진 LG’를 이야기 할 때 류택현을 빼 놓아선 안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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