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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일본에서 뛸 때 특급 선수들과 외국인 선수들은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쓰였다. 언제든 한방을 때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 오니 모두 외국인선수 아닌가. 게다가 가끔 만나는 일본 선수가 이치로(시애틀)나 마쓰이(뉴욕 양키스)였다."
보스턴 레드삭스 특급 불펜으로 활약중인 오카지마가 밝힌 메이저리그 진출 첫해를 보낸 소감 중 일부다. 농담을 섞어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 속엔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뿌리 깊은 부담감이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그랬다. 외국인 선수들은 동양권 선수들에게 부담 그 자체였다. 기량도 기량이지만 체격 조건부터 너무 큰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이같은 분위기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얼마든지 해볼 수 있는 상대'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의 WBC 2라운드 첫 상대는 멕시코였다. 너무도 중요한 경기였다. 한국과 2라운드에 한조에 속한 나라는 멕시코와 미국, 그리고 일본이었다. 4강 진출을 위해선 멕시코와 일본을 반드시 잡아야 했다.
1라운드를 전승으로 통과하며 가파르게 살아난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도 멕시코전은 매우 중요했다.
부담감을 극복하는 것이 먼저였다. 멕시코는 메이저리그 A급 선수들로만 구성됐던 미국이나 도미니카만큼 화려하진 않았지만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었다.
메이저리그서 한 몫을 했던 선수들은 물론 적어도 멕시칸리그서 펄펄 날던 선수들이 주축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A급 용병들로만 구성된 팀'을 상대해야 했던 셈이다.
실타래는 또 한번 이승엽이 풀어냈다. 이승엽은 1회 멕시코 선발 로드리고 로페스를 상대로 우월 투런 홈런을 쏘아올렸다. 볼 카운트 1-3에서 몸쪽 체인지업을 걷어올려 우측 담장을 훌쩍 넘겨버렸다.
선수들의 가슴 한켠에 자리잡고 있던 불안감을 날려버린 한방이었다. 로드리고 로페스는 약체 볼티모어에서 뛰면서도 2005시즌 15승(12패)을 거둔 투수. 막연한 불안감은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이후 타선은 좀처럼 점수를 뽑지 못했다. 이날 한국이 때려낸 안타는 5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빈자리는 마운드로 메웠다. 선발 서재응이 5.1이닝 1실점으로 호투한 뒤 구대성 정대현 봉중근이 이어던지며 멕시코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특히 정대현은 3타자를 내리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쾌투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마무리는 다시 박찬호였다. 박찬호는 안타 1개를 내준 뒤 내야 땅볼과 패스트볼로 2사 3루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마지막 타자 제로니모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경기를 매조지했다.
삼진을 잡은 뒤 힘껏 내지른 오른손 포효는 거침없는 한국의 질주를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날 숨은 수훈 선수는 단연 유격수 박진만이었다. 경기 후 파킨 에스트라다 감독은 "박진만은 모든 타구를 다 잡아내는 선수 같다. 위치 선정이 빼어나고 민첩하다. 박진만 때문에 안타성 타구가 잡혔고 그것이 경기의 흐름을 바꿔놓았다"고 평가했다.
에스트라다 감독이 박진만의 수비에 얼마나 놀랐었는지는 이 한마디에서 가장 잘 알 수 있다. "공이 가는 곳 마다 그가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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