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 확대경] 김두현, 앉은 김에 쉬어가라

임성일 기자I 2008.10.01 09:30:21

[이데일리 SPN 임성일 객원기자] 김두현의 갑작스런 부상은 꽤나 가슴 아픈 소식이었다. 웨스트브러미치가 치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초반 6경기에 모두 출전하던, 작금 세계 최고의 무대라 평가받는 곳에서 서서히 자신의 입지를 다지던 좋은 분위기를 감안할 때 퍽이나 섭섭한 돌부리가 아닐 수 없다. 9월초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났을 때 “확실히 자신감이 쌓이는 것 같다. 역시 큰물에서 놀아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당찬 자신감으로 EPL 적응기를 설명하던 김두현의 모습이 떠올랐으니 더욱 아쉬웠던 비보였다.

최근 “2008-09시즌 활약이 가장 기대되는 유럽파는?”이라는 설문 결과 김두현은 프랑스 리그1 AS모나코에 입성하며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던 박주영과 한국축구의 자존심인 맨체스터Utd.의 박지성을 따돌리며 최다득표를 차지했다. 그만큼 높은 기대감을 가졌던 팬들 역시 안타까운 마음 가실 길이 없을 것이다. 물론, 당사자의 억울함에 비할 바는 아니겠다. 그는 오죽할까.

원치 않은 소식을 듣고 함께 아파하다 한편 “차라리 다행이다”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팬들의 원성이 자자할 허튼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건 김두현을 바라는 마음에서다. 실상 김두현의 현재는 브레이크 없이 가속페달만 밟던 상황이라 한들 무리가 아니다. 지난해 챔피언십을 통해 해외무대의 문을 두드린 이후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한 지금까지, 그는 대표팀과 소속클럽을 넘나들며 그야말로 바지런히 뛰었고 게으름 없이 노력했다.

그 결과 웨스트브러미치 내에서 나름 후한 평가를 끌어낼 수 있었고 그간 ‘박지성의 대체자’ 정도로 절하됐던 대표팀 내에서의 위상도 시나브로 달라질 수 있었다. 잉글랜드에서의 성공여부를 둘러싼, 반신반의했던 안팎의 반응도 어느 순간 호의적인 목소리 일색으로 변했다. 이는 모두 김두현 본인의 뜨거운 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변화다.

사실 그래서 걱정이 됐던 것이다. 너무도 빨리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에 알게 모르게 과부하가 걸린 지도 모른 채 마냥 채찍질만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이럴 땐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어지간한 문제는 그냥 넘어가는 게 다반사다. 정확한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번 무릎 부상도 어느 정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비슷한 케이스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2006독일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라이언 킹’의 포효를 자랑했던 이동국이 갑작스럽게 필드에서 쓰러졌고 2006년을 통해 혜성처럼 등장해 2007년 아시안컵까지 겁 없이 질주하던 염기훈 역시 피로골절이라는 암초에 쓰러졌던 기억이 있다. 공히, 잘 나갈 때 발목이 잡힌 격이다. 소위 ‘잘 나갈 때’ 더욱 조심하고 뒤를 살펴야한다는 세상사의 진리가 축구판에서도 여실히 통용되고 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 이번 김두현의 부상이 외려 잘됐다는 생각이다. 물론, 심각하지 않다는 전제에서다.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던 연의 줄이 끊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잠시 예상치 못했던 흐름에 잠시 휘청거렸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겠다. 거센 바람이 불 때 그것을 이겨보겠다고 줄을 팽팽히 잡아당기다가는 숫제 땅으로 곤두박질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줄을 느슨하게 풀고서 숨을 고르고 다시금 방향을 설정하는 여유가 필요한 법이다. 앉은 김에 쉬어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갈 길이 창창한 김두현에게 전화위복의 시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베스트일레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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