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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형구가 사건 현장에서 술에 취해 자다가 깬 뒤부터 영화는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형사였던 형구는 교사가 돼 있고 유력하다 의심했던 용의자는 이웃이 돼 있으며 처에 자식, 집까지 온데간데없어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자아와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형구는 속이 답답하다 못해 터지기 직전이다. 주변에서는 “도대체 왜 그러냐” “정신 좀 차려라”며 자신이 모르는 자아와 삶을 강요한다. 타인과 세계가 규정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때의 형구의 시점에서 영화의 장르는 낯설게 변해있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에 꿈이 한 순간의 꿈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꿈이 연속성을 가진다면, 우리는 그것을 꿈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현실이라 착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전에 현실로 믿었던 세계가 꿈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실이거나 현실로 믿었던 세계에서의 나와, 꿈이거나 꿈인 줄로 안 세계에서의 나 가운데 누가 진짜 나인가. 나는 어떤 세계에 발 딛고 서야 하는지, 아니면 양쪽 세계에 한 발씩 걸쳐놔야 하는지. 정체성이라는 것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타인에 의해서 부여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이 부여한 정체성을 그냥 수용하면 되는 건지. 그건 또한 나일 수 있는 건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요즘은 꿈보다 가상의 세계가 더 현실과 자아를 위협하는 시대이다. 무한한 가상의 세계에서 우리는 무수한 나로 존재하며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현실과 가상의 혼동으로 정체성이 약해지는 시대에서 나는 누구인가. ‘사라진 시간’이 묻는다.
감독 정진영. 러닝타임 105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6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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