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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 채워지고 난 후엔 질을 바꿔야죠.”
윤정화 종합편성채널 채널A 제작본부장은 만년필을 쓴다. 정기적으로 잉크를 갈아야 하는 것이 번거로우나 손에 익어 바꾸기 쉽지 않다. 예전부터 써오던 게 습관이 됐다. 타 경쟁방송사와는 달리 윤 제작본부장은 PD가 아닌 작가 출신이다. 만년필을 쓰는 것은 어쩌면 작가 시절의 창의와 창작자로서 자세를 잊지 않으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성성이 짙은 방송가에서 여성 리더로서 채널을 이끄는 것도 눈에 띈다.
윤정화 제작본부장은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채널A의 강점으로 꼽았다. 혹자는 보수적인 종합편성채널의 성향을 이유로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채널A는 변화와 혁신의 한 가운데에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중장년층 채널이라는 편견을 깨고 젊어지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방송 채널로서 지난 4년은 양을 채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지상파와 비교해 인력도 달리고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던 것도 사실이죠. 낮은 채널 인지도는 번번이 발목을 잡았고요. 실패의 연속이라는 말도 있으나 성공의 경험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양이 채워지면 질이 변한다고, 이제는 채널A의 프로그램의 퀄리티가 뛰어야 할 때죠.”
윤정화 제작본부장은 종편 4사 중 개국 당시부터 채널을 맡았던 유일한 인물이다. KBS 등 지상파에서 작가로 활동하다 채널A로 왔다. 방송가에서 평생을 몸담았지만 이전의 방식은 모두 털어냈다. 그는 “종편 채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종편만의 방법이 필요했다”며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조금씩 땅을 일궜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부딪혔다. 어쩌면 PD출신이 아니기에 가능했던 ‘맨땅에 헤딩’이다”고 설명했다.
채널A의 제작시스템은 타사와 조금 다르다. 윤 본부장은 지난해부터 채널A 개국 당시 입사했던 신입 PD들에게 프로그램 기획안을 주문했다. 외주제작사 의존도를 낮춰보자는 의도였다. 성공적인 결과물도 나왔다. 지난 12월 첫 방송돼 종합편성채널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한 동물 예능프로그램 ‘개밥 주는 남자’다. 연출을 맡은 최윤아 PD는 채널A 공채 2기 PD다. 윤 본부장은 “1년을 공들이더니 결국 사고를 치더라”며 웃었다. 그가 자랑했던 유연한 인력운용과 파격 편성이 낳은 결과다.
“PD들에게 겁 없이 기획하고 만들라고 주문했습니다. 팀장급 선배들은 PD들을 도와 프로그램을 단단하게 다져줘야죠. 도전의 리스크는 협업으로 메웁니다. 아쉬움이 있는 제작 여건이나 ‘창의적 솔루션’을 찾으라 주문하죠. 물론 외주제작사와의 협업도 중요하죠. 누적된 현장의 경험은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거든요.”
2016년의 플랜은 나와 있다. 강점이었던 건강 혹은 생활정보 프로그램은 ‘기본 상품’이다. 여기에 그동안 채널A에서 선보이지 않았던 발칙한 ‘전략 상품’을 더하는 투트랙 전략이다. 윤 제작본부장은 “3040 여성들에 어필하기 위한 드라마 콘텐츠 제작도 준비단계에 있다”고 귀띔했다.
“이전에는 어떻게든 시청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제는 타겟 시청층인 2049세대를 조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윤정화 제작본부장은 “시청률이 잘 나오는 프로그램이라도 화제성 등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과감히 폐지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특정 계층만 노렸던 과거의 방식은 일부 털어냈다. 김병만 현주엽 박준형 정준하 등이 출연하는 ‘머슴아들’을 최근 런칭하며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을 라인업에 더했으니 다음은 ‘쇼’다. 채널A 예능의 마지막 조각은 음악 쇼가 될 것이라 예고했다.
“방송은 시청률 싸움이라지만 금방 승부가 나는 게임은 아닙니다. PD는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시청자에 사랑받는 프로그램이 나오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견뎌내야 하거든요. 채널A 역시 참을성 있게 준비했고 이제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