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우리 아이돌 사주·궁합 좀 봐주세요"

조우영 기자I 2012.06.28 08:37:57
안무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가수 지망생들.
[이데일리 스타in 조우영 기자] “김태양(가명) 1994년 1월27일생”, “중도하차. 오래 갈 사람이 아니야. 고집과 주관이 너무 세. 사업할 사람이지 연예인으로서는 못 써”

“나햇님(가명) 1992년 4월3일생”, “이 친구가 제대로네. 끼가 많아. 모든 부분에서 유연하고 밝아. 대중의 꽃이 될 사람. 잘 활성화 시켜봐.”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A 기획사 대표는 지난 27일 경기도 곤지암에 있는 한 암자를 찾았다. 가요 제작자들 사이에 유명한 점집이다. 현재 ‘잘 나가는’ 다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사주팔자가 여기서 풀이됐다.

“미신 따위는 믿지 않는다”던 그는 주위 사람들의 추천에 마지못해 지인을 따라나섰다. 답답한 마음에서였다. 애초 7월께 5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멤버 한 명이 그만뒀다. 팀의 데뷔가 잠정 연기됐다. 새로운 멤버를 보강해야 하고 안무 연습·노래 녹음도 다시 해야 한다. 점쟁이 입에서 ‘중도하차’라는 말이 나온 바로 그 멤버 때문이다.

우연찮게도 점쟁이의 말이 딱 들어맞았다. 그는 내친 김에 궁합도 봤다. 남녀 간의 궁합이 아니다. 멤버와 멤버 간, 멤버들과 제작자인 그와의 조합이 궁금했다. 그는 곧 마음을 굳혔다. 전체를 살리기 위해 아무개를 팀에서 빼야겠다고.

경쟁이 치열하다 못해 전쟁터 같은 게 최근 가요계다. 몇몇 기획사 혹은 데뷔 그룹의 멤버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신에 의지하는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진다. 점쟁이의 말 한마디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만큼 어딘가 기대고 싶은 게 요즘 가요계의 정서다.

5인조 그룹이 데뷔하는 데는 짧게 잡아야 1년 여가 걸린다. 그 과정에서 기획사와 멤버, 멤버와 멤버 사이에서 숱한 갈증이 벌어진다. 들어가는 돈만 한달에 기본적으로 3000~4000만원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점쟁이의 사주풀이를 참고하는 게 현실이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그간 수억 원을 투자했는데 실패할 순 없다”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점쟁이를) 찾는데, 사실 스스로 위안을 찾기 위해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한 인기 걸그룹을 키워낸 B 기획사 대표는 점쟁이에게 작명까지 부탁했다고 털어놨다. B씨는 “1년에 수 십여 아이돌 그룹이 쏟아져 나왔다가 사라지고 있어 제작자들의 마음은 그만큼 절박하다”며 “어려운 현실에서 잠시 도움을 얻고 싶은 게 아니겠느냐”고 씁쓸해했다.

점이나 사주는 그저 위안일 뿐이다. 결국은 실력을 쌓아야 살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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