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순진하면서도 당돌한 백화점 직원 '진주'(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의 이미지는 눈가에 살짝 남아 있을 뿐이었다. 신애라(39)는 사려 깊은 여자였다. 세 아이의 엄마여서일까. 인터뷰를 요청한 지 20일이 지나서야 겨우 시간을 내 마주앉은 그녀는 "두 번째 입양이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줄 알았고, 그래서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었다"며 웃었다.
신애라는 2005년 예은(2)이에 이어 올 초 생후 100일 된 예진이를 입양해 화제를 모았다. 낳은 아들 정민(10)이까지 3남매 뒤치다꺼리로도 바쁘지만, 그녀는 성경 공부, 봉사활동으로 1주일이 빠듯하다. 그 중에서도 입양·위탁보호시설인 '대한사회복지회' 봉사에 열심이다. 벌써 5년째. 예은이, 예진이를 모두 그곳에서 만났다. 동료 연기자이며 남편인 차인표(41)씨와는 국제 어린이 구호단체인 '컴패션'의 홍보대사로도 활동한다. 두 번째 입양인데도 두려움이 앞섰던 것은 정작 자기 자신이었다고 그녀는 고백했다.
"잘 키울 수 있을까, 아프면 어쩌나, 예은이가 두 돌 지나 이제 겨우 편해졌는데 또 그 고생을 해야 하나 싶은 순전히 인간적인 걱정이었지요." 그래서 '천사부부'라는 세간의 칭찬이 못내 부담스럽다는 그녀였다.
―예은, 예진이와 처음 만났던 순간이 궁금하다.
"막상 아기들을 보니 다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그 중 한 명을 선택한다는 게 가슴 아팠다. 그래서 기다렸다. 우리 부부가 한 아이에게 선택되어지기를. 봉사한 지 10개월 만에 예은이가 우리를 '선택'했다. 계속 잠만 자던 모습이 집에 와서도 마음에 걸리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예진이는 우유를 잘 토해서 비쩍 마른 아기였다. 어느날 내 품에서 '응가'를 해 목욕을 시키는데, 복지회 선생님들이 3일 만에 처음 용변을 본 것이라며 기뻐하시길래 남다르게 느껴졌다."
―두 번째 입양에 대해 남편과의 사이에 이견은 없었나.
"예은이 입양할 때부터 셋째도 입양하기로 했었고, 이름도 미리 지어놨다. 입양을 할 거면 내가 낳은 아이의 수보다 많이 입양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입양에 관심 갖게 된 계기가 있는지.
"워낙 아이들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옆집 아기들 목욕은 내가 도맡아서 시켰다(웃음). 결혼 후 '컴패션'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죄 없이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맏이인 정민이의 반응은 어땠나. 두 여동생의 입양에 대해 동의를 구했는가.
"어릴 때부터 입양에 대해 자주 얘기해서, 따로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막상 예은이가 오니까 '엄마, 나는 왜 안 사랑해' 하면서 불평하더라."
―집안 어른들이 둘째 입양엔 반대하셨을 것 같다.
"시어머니께서는 육아가 워낙 힘든 줄 아시니까 '그만 편하게 살면 안 되겠니?' 하시며 걱정하셨다. 그래도 우리 뜻이 간곡하니 반대 안 하셨다."
―세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전쟁이나 다름없다. 연기생활과도 병행해야 할 텐데.
"정민이는 컸으니까 일단 밖으로 내몬다(웃음). 안 다니던 학원에도 간다. 내가 방학이 끝나길 손꼽아 기다리는 엄마가 될 줄은 몰랐다. 예민한 '얼음공주' 예은이가 문제여서 예진이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데리고 자고, 나는 예은이랑 잔다. 어쩌다 내가 예진이를 안고 있으면 '엄마, 안지마' 하며 매달린다. '다행히' 3월부터 예은이가 어린이집에 간다. 드디어 예진이를 맘껏 사랑해줄 시간이 왔다."
―예은이 키우면서 힘들지 않았나.
"감사하게도 감기 앓은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소화도 잘 시키고 그 흔한 아토피도 없다. 다만 뭔가 마음에 안 들면 칭얼거리는 버릇이 있는데, 그럴 땐 '엄마는 네 말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또박또박 다시 얘기해봐' 하며 따끔히 가르친다."
―우리 사회의 혈연주의는 완고하다. '누구 씨인 줄도 모르는데'라는 말 같은 것 말이다. 그런 완고한 생각 속에는 아이의 유전적 특성을 모른다는 '불안감' 같은 게 있는 것도 사실이고. 솔직히 불안하지 않은가.
"좋은 피, 좋은 집안, 좋은 조건의 기준은 무엇인가. 내가 낳은 자식도 잘못 키우면 말 안 듣고 말썽 피운다. 입양한 아이라 문제가 되겠다는 생각이 우리 입양문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혹 '내가 배 아파 낳은 아이보다 입양한 아이를 덜 사랑하며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입양을 망설이는 사람들도 있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입양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우리 가정에 아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우리 가정이 필요해서' 인연을 맺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신애라씨처럼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입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 않다. 실제로 입양한 가정들을 보면 평범한 형편에서 도우미 없이 혼자서 키우시는 분들이 훨씬 더 많다.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육아가 편해지기야 하겠지만, 입양의 기준은 돈이 아니다."
―컴패션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동남아·중남미 등지에 있는 27명의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그곳 아이들에게 월 3만5000원은 쓰레기더미에서 뒹굴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세 끼니를 굶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금액이다. 19명의 어린이들을 그렇게 후원한다. 나머지 8명은 대학생이다. 그들이 마음껏 공부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잉꼬 부부로 소문나 있지만 남편과 싸울 때도 있지 않나. 반듯하기로 소문난 차인표씨라도 아내를 속상하게 하는 건 여느 남편과 비슷한 것 아닌가.
"당연히 다른 부부들이랑 똑같다. 인표씨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야행성이라 내 잔소리를 많이 듣는다. 심각하게 다툴 때도 물론 있고. 다행히 컴패션 홍보 대사로 함께 활동하고 예은이를 입양하면서 신앙적으로 서로 깊어지고 성숙해졌다. 삶의 중심이 같아 감사할 뿐이다."
―예은이, 예진이를 공개 입양했다. 나중에 두 아이가 받을 상처가 걱정되지 않나.
"공개 입양을 한 건 입양이 떳떳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예은이는 좋겠다. 낳아주신 엄마도 있고 하나님이 주신 엄마도 있으니'라고 말해준다. 좀 더 자라 진지하게 물어오면 '친엄마가 어려운 여건에서도 너를 포기하지 않고 낳아주신 덕분에 우리가 만난 것'이라고 설명해 줄 것이다. 몸이 아픈 아이에게 그 원인이 무엇인지 설명해줘야 하듯, 슬프지만 입양의 이유를 말해주는 것이 훨씬 건강하다고 믿는다."
―한국은 여전히 고아 해외 송출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정부나 우리 사회에 제안하고 싶은 말은.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무조건 정책만 만든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한 아이가 지속적으로 한 울타리에서 사랑받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열악한 시설보다는 우리의 따뜻한 가정이 울타리가 되어주는 게 낫지 않겠는가."
신애라씨는
'사랑이 뭐길래'(1992)에서 '대발이' 최민수의 처제 역을 맡았을 때, 그녀의 별명은 '한국의 피비 케이츠(Cates)'였다. 피비 케이츠는 브룩 실즈와 더불어 80년대 인기를 누렸던 할리우드 스타. 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1994)에서는 여주인공 이진주 역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함께 출연했던 탤런트 차인표씨와 95년 결혼, 아들 정민이를 낳았다. 입양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된 건 2005년 국제 어린이 구호단체 컴패션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부터. 같은 해 '대한사회복지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예은이를 2005년 12월 입양한 데 이어 2008년 1월 생후 100일 된 예진이를 새 식구로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