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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지난 7일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7’의 한스 짐머 OST 콘서트에 낭독자로 등장했다. 그는 ‘다크나이트’ 테마곡 연주와 함께 한스 짐머의 메시지를 대신 전하고, 조커 역의 히스 레저를 추모했다.
‘영화 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는 이병헌의 목소리로 “조커는 분노에 가득 찬 무질서하고 무자비한 망나니인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내에서 유일하게 가장 솔직한 복잡하고도 매력 있는 캐릭터” “히스 레저는 놀란 감독이 구상하던 조커 캐릭터 그 이상으로 조커라는 캐릭터에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역할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히스 레저에게 두려움이나 주저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찍은 모든 장면들은 매우 강렬했고 모두를 압도했다. 스크린을 통해서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마치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히스 레저에게 애도와 존경을 표한다”라며 먼저 떠나간 영원한 조커, 히스 레저에 대한 애정을 전했다.
특히 감성적인 배우 이병헌의 목소리로 전한 ‘히스 레저’ 추모 글은 한스 짐머의 진심이 전해지며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관객들에게 히스 레저를 그리워하고 눈물 짓게 만들었다.
오는 19일에는 할리우드의 최고 꿈을 이루기까지 히스 레저가 걸어간 여정과 배우로서 전성기를 누린 청춘 히스 레저의 인생을 돌아보는 영화 ‘아이 엠 히스 레저’ 개봉한다. 이병헌은 ‘남한산성’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병헌이 낭독한 글 전문’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처음 ‘배트맨 비긴스’를 시작했을 때 그것이 결국 세 편의 시리즈물이 될 줄 몰랐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리즈의 제작기간이 12년이란 저희 삶의 큰 일부가 될 거라는 건 더더욱 몰랐죠. 이 3부작이 여러분들에겐 단순한 영화 세 편으로 느껴지실 수 있지만 저희에겐 12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린 작품이었습니다.
누구의 인생에서도 12년이란 시간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죠. 이 긴 여정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게 전화로 영화 ‘배트맨’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는 많은 사랑을 받았고 영화사에선 저희에게 속편 제작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놀란은 본인의 의지나 아이디어가 없이는 절대 영화를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제안을 거절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란이 제 작업실에 찾아 왔습니다. 그리곤 그는 자기가 요즘 구상하는 매력 있는 캐릭터가 있다며 조커라는 캐릭터에 대해 여러 가지를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머릿속 조커는 분노에 가득 찬 무질서하고 무자비한 망나니인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내에서 유일하게 가장 솔직한 복잡하고도 매력 있는 캐릭터였습니다.
그가 조커에 대한 생각을 제게 풀어놓을수록 이토록 어려운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쉽게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 놀란에게 고려하고 있는 배우가 있는지 물었고 그는 히스 레저라는 어떤 젊은 배우를 제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히스 레저는 조커 역을 맡게 되었고 그는 놀란이 구상하던 조커 캐릭터 그 이상으로 조커라는 캐릭터에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역할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에게 두려움이나 주저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찍은 모든 장면들은 매우 강렬했고 저희를 압도했죠. 스크린을 통해서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마치 꿰뚫어보는 것 같았어요. 그의 강렬한 퍼포먼스에 힘입어 영화와 제 음악작업이 마무리 될 쯤 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당시 저는 패닉에 빠진 채 그의 캐릭터를 망나니 같이 보이게 하고 냉혹하게 만드는 모든 불쾌하게 들리는 요소들을 빼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곧 깨달았죠. 레저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그가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캐릭터와 레저에게 애도와 존경을 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녹슨 면도칼 소리 같은 불쾌한 요소들까지도 그대로 살려서 캐릭터의 복잡하고 무자비한 성격을 최대한 돋보이게 하는 방법 밖엔 없다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놀란이 제게 또 와서는 이왕 하는 거 마지막 편을 하나 더 만들어서 삼부작으로 만들자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저희는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제작하게 됐습니다. 또 다른 모험을 통해 완성 된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시사회는 뉴욕에서 많은 찬사를 받으며 성대하게 마쳤습니다. 그리곤 연이은 런던의 시사회를 위해 비행기에 곧바로 몸을 실었죠.
아마 아침 일곱 시쯤 런던에 도착해 집으로 돌아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이른 아침에 갑작스레 전화가 울렸고, 전화를 건 기자가 뜬금없이 제게 코멘트를 요청하더군요. 그는 미국 콜로라도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아주 작은 도시인 오로라에서 우리의 영화 상영 도중 일어난 총격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고 물었습니다. 저희는 밤새 비행기에 있었기에 전혀 소식을 접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 소식을 기자에게 처음 들으며 떠오른 첫 단어이자 유일한 단어인 절망을 그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곤 그 날 하루 종일 이 사건의 피해자들과 뒤에 남겨진 피해자의 유가족들에 대한 생각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자에게 말한 절망이란 단어가 제가 소식을 접했을 때의 감정을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죠. 그래서 합창단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가사가 없이도 바다 건너 유가족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곡을 하자고 제안했던 것이고 그 곡을 지금 여러분들이 듣고 계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