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제공] 오디션은 뮤지컬의 흥행을 쥐락펴락한다. 개막 전 제작 프로세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배우 잘 뽑으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 굵직한 뮤지컬 오디션 장들을 들여다봤더니 노래·춤·연기 3박자가 아닌 심사 포인트가 따로 있었다. 오디션의 비밀을 공개한다.
◆늘씬한 다리를 찾아라
지난 23일 서울 역삼동의 한 스튜디오. 한 면이 통째로 거울인 방에서 여배우들이 탭 댄스를 추고 있다. 따가다닥 따가다닥 따가다가따가닥…. 신발 바닥의 쇠붙이와 빨간 마룻바닥이 리듬감 있게 부딪쳤다. 그녀들은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7월 21일부터 LG아트센터)의 앙상블(쇼걸들)에 지원한 배우들. 모두 '핫팬츠에 스타킹 차림'이었다.
《프리티 레이디》라는 뮤지컬의 오디션부터 공연까지 제작 과정을 담은 이 작품은 역동적인 탭이 강점이다. 특히 쇼걸들의 군무가 감상을 좌우하기 때문에 '늘씬한 하체'가 심사 포인트였다. 이날은 2차 오디션으로 39명이 서곡에 맞춰 탭 댄스를 췄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30초. '옆으로 이동→제자리 탭→회전→이동→점프→발레 동작→탭→회전하며 탭→한 바퀴 돌아 마무리'까지 한 사이클을 보면서 몸 라인과 탭 실력, 균형감과 유연성, 에너지와 표정 등을 평가받았다.
"다리 ×" "뻣뻣하다"…. 채점표에 이런 코멘트를 남긴 한 심사위원은 "막이 올라갈 때 탭 댄스를 추는 다리부터 보이는 작품이기 때문에 하체 라인을 엄격하게 봤다"고 말했다. 이 뮤지컬에서 여주인공 페기가 부르는 노래 〈42번가〉도 이렇게 흘러간다. "잘 봐요 춤추는 다리/ 당신에게 보여드릴게요, 포리세컨 스트리트~."
◆"빌리야, 어디 있니?"
뮤지컬 제작사 매지스텔라는 '빌리(Billy)'를 급구(急求) 중이다. 내년 여름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할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국내 초연에서 주인공 빌리를 맡을 소년을 찾고 있다. 내달 6일까지 원서를 접수하는데 지원자격이 이채롭다. '10~12세, 신장 150㎝ 이하의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소년.'
극중 빌리가 11세이기도 하고, 소년이 갑자기 키가 자라고 변성기를 겪으면 무대에 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로 먼저 나왔고 엘튼 존이 곡을 붙인 이 히트 뮤지컬에서 빌리 오디션의 포인트는 여느 오디션과 달리 즉흥성과 잠재력이다.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인 빌리는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빌리 후보들은 선발된 뒤 1년간 '메이킹 빌리 트레이닝'을 받게 된다.
◆안중근과 팬텀은
안중근(뮤지컬 《영웅》)과 팬텀(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단연 올해의 배역(등장인물)이다. 안중근(1879~1910)을 불러내는 창작 뮤지컬 《영웅》은 하얼빈역 의거로부터 꼭 100년이 되는 10월 26일 LG아트센터에서 초연된다. 현재 안중근 역에는 김도현 김수용 류정한 서범석 이건명 정성화(가나다순) 등이 경합하고 있다. 연출가 윤호진은 "안중근이 교수대에서 부르는 〈한 발자국〉의 노래와 감정이 우리가 기대하는 안중근 이미지에 얼마나 가깝느냐가 오디션의 포인트"라고 말했다.
한국어 공연으로는 8년 만인 《오페라의 유령》(9월부터 샤롯데극장)도 주인공 팬텀(유령)과 크리스틴을 뽑고 있다. 성악가 300여명을 비롯해 1000여명이 지원한 가운데 2월 중순 최종 오디션을 연다. 하이 바리톤 음색인 팬텀은 노래에 드라마의 감정을 얼마나 투영하느냐가 관건. 제작사 설앤컴퍼니는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팬텀에게 중요한 건 외모가 아니라 아우라(기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