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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유' 엄태화 "'가려진 시간' 때 붕괴…이번엔 재미가 1순위"[인터뷰]①

김보영 기자I 2023.08.09 09:38:50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가려진 시간’ 때는 말 그대로 붕괴됐었죠(웃음). 그래서일까, 이 영화를 만들 때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1번이었어요. 상업영화의 재미를 잃지 않으려 그렇게 마지막까지 영화를 셀 수 없이 고쳤어요.”

전작 ‘가려진 시간’ 이후 무러 7년 만에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돌아온 엄태화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며 되새겼다는 다짐이다.

엄태화 감독은 최근 ‘콘크리트 유토피아’(이하 ‘콘유’)의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개봉일인 9일 오전 예매량 17만 8797명을 넘어서며 새로운 흥행 포문을 예고하고 있다. 기존까지 정상을 달리고 있던 ‘오펜하이머’(감독 크리스토퍼 놀란)를 제치고 한국 영화는 물론 전체 예매율 1위에 올라선 것. 이에 14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던 김혜수, 염정아 주연의 류승완 감독 신작 ‘밀수’의 독주를 막을 유일한 한국영화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다. 앞서 ‘잉투기’, ‘가려진 시간’을 선보이며 비주얼리스트로 가능성을 주목받은 엄태화 감독이 처음 도전한 상업 영화 대작이다.

특히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 이후의 이야기를 극강의 리얼함으로 녹여냈을 뿐만 아니라, 탄탄한 서사와 빈틈없는 배우들의 연기 시너지, 그리고 묵직한 메시지까지 담았다며 시사 이후 영화 팬들은 물론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박지후, 김도윤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의 열연, 신선한 소재와 완성도 높은 볼거리로 올여름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엄태화 감독이 전작 ‘가려진 시간’(2016) 때 겪은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이를 갈고 만든 대작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강동원이 주연을 맡았던 ‘가려진 시간’은 몽환적인 연출과 순수한 서사로 마니아층을 형성했으나, 상업적 흥행엔 실패해 누적 관객수 51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엄태화 감독은 당시 심경을 묻자 “그 땐 붕괴됐었죠”라며 자신의 스승인 박찬욱 감독의 작품 ‘헤어질 결심’ 속 대사를 인용한 재치넘치는 답변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그땐 강동원 배우가 가장 잘 나갈 때였다. 전작 검사외전이 9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흥행 불패였을 때”라며 “개봉 시기상 시장 상황도 안 좋았다 생각은 한다. 이처럼 작품 하나가 흥행하려면 작품도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후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만난 작품이었다고. 엄태화 감독은 “이후 ‘내가 어떻게 해야 다음 영화를 내놓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약 2년 정도 시나리오를 썼다. 그런데 그걸 마무리를 잘 못 짓겠더라”며 “그리고 난 뒤 이 작품을 만나고 웹툰을 만난 것이다. 이 작품만큼은 엔딩까지 끝ᄁᆞ지 그려나갈 수 있었고, 영화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에 회사에 먼저 제안했다”고 과정을 털어놨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상업적 재미’를 지키는 게 1순위 과제였다. 엄 감독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며 어떠한 인물에 자신을 대입하고, 또 그 인물들의 선택을 지켜보고 그들의 선택이 초래하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을 계속 맞이한다면 그게 하나의 재미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며 “출연 배우분들도 상업영화를 많이 경험해보신 분들이지 않나, 이 분들이 흔쾌히 작품을 선택해주셨을 땐, 이 작품이 그분들이 보셨을 때도 상업적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작품으로 보여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을 것 같아 만든 이야기를 알아봐주시니 감사했다”고 회상했다.

원작 웹툰 ‘유쾌한 이웃’의 배경이 ‘아파트’란 점도 매력적 요소로 작용했다. 그는 “아파트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고, 한국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애환과 애증의 공간이라 생각한다”며 “한국적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구성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공간이 있을까 싶더라”고 말했다. 아파트가 한국 사회를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란 확신을 바탕으로 원작보다 ‘아파트’란 배경이 주는 키워드를 메인으로 가져가려 노력했다고도 부연했다. 또 “원작 웹툰이 집단과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저흰 그런 부분을 담되 극단적 상황 속 사람들의 ‘먹고사니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데 더 초점을 맞췄다”며 “극 중 다양한 인물들을 관찰하다보면, 관객분들마다 감정이입되는 인물들이 다 다를텐데 그 안에서 영화 속 인물들의 선택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상황 자체가 재미를 줄 것이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관객들의 몰입이 중요한 영화였던 만큼, 이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현실성있는 연출을 중시했다. 엄태화 감독은 “조금이라도 판타지처럼 보이면 몰입이 깨질 것 같았다”며 “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도 최대한 ‘진짜같아’ 보여야 했다. 실제 내가 살았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번쯤 만났을 법한 그런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다. 아파트의 인테리어, 구조부터 배우들의 연기톤, 분장, 의상까지 신경을 많이 썼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콘크리트 유토피아’ 관람 후 관객들 사이에서 가장 갑론을박이 많은 캐릭터가 박보영이 연기한 ‘명화’다. 극한의 상황에서 무리해서라도 ‘선함’을 지키려는 명화의 올곧은 행동이 일각에선 호불호를 유발하며 논쟁을 낳는 것. 엄태화 감독은 “명화 캐릭터를 처음 그릴 때부터 그런 반응들은 예상했다”면서도, “다만 그렇게만 비춰지지 않게 배우와 함께 나름대로 무진 애를 쓴 건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관객 입장에서 옳은 말만 캐릭터가 ‘민폐’로 비춰지는 이유는 그 캐릭터가 평면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일 거란 생각을 했다”며 “다른 인물들처럼 굴곡이 있어 변하기도 하고, 약점을 갖기도 해야 이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보여지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주민 대책 회의에서 더불어 살자는 의견을 보였던 명화도 체제에 순응을 하는 시기가 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다시 선한 신념이 각성을 하고 그 신념에 집착을 하는 모습들이 있다. 또 그런 그조차 황궁 아파트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영화의 결말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었으면 했다”라며 “물론 이 영화가 질문에 대한 답까지 내리고 있진 않다. ‘어떻게 살아야 돼?’란 질문에 대한 답들을 관객분들이 생각하실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소망을 전했다.

엄태화 감독은 이 영화의 키워드를 ‘연민’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그는 “극 중 인물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극단적 행동들을 하지만,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라며 “이 사람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는 ‘연민’을 느끼게 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또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메시지에 대한 생각 없이 봐도 장르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바로 오늘 9일 극장에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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