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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상무 "더이상 잃을 게 있나, 없나~" "없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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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기자I 2009.02.28 11:02:54

입대·전역 혼선 속 4시즌 연속 꼴찌

"제2의 조원희 될 기회의땅" 땀 뻘뻘


[조선일보 제공] 스포츠 세계에는 늘 승자와 패자가 있다. 성적은 순위로 매겨지고, 순위표 맨 아래엔 '꼴찌'란 달갑지 않은 이름이 있다. 영원한 선두가 없듯 영원한 꼴찌도 없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꼴찌에게는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희망이 있다.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스포츠의 아름다운 꼴찌들을 조명한다.

지난 24일 광주월드컵 보조경기장. 호남대와 연습경기를 끝낸 광주 상무의 이수철 코치는 선수들을 불러모았다. "왜 이리 소극적이야? 우리는 도전자라고.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잖아!" 짧은 머리에 얼굴이 검게 탄 선수들의 눈이 일제히 반짝였다. 2005년부터 4시즌 연속 프로축구 K리그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던 광주 상무의 동계 훈련 현장을 찾았다.

◆"올 시즌엔 반드시 꼴찌 탈출"

광주 상무는 지난 시즌 3승7무16패(승점16)로 14팀 중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2005년 이후 꼴찌를 도맡아 하고 있다. 상무도 프로축구에 처음 뛰어든 2003 시즌엔 12팀 중 10위를 했고, 이동국과 김상식이 활약한 2004년엔 6승11무7패(승점29)로 13팀 중 8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었다.

하지만 군(軍) 팀이다 보니 매년 선수의 절반이 전역하고, 절반이 입대해 팀을 늘 새로 꾸려야 하는 것이 상무의 최대 약점이다. 주전급 선수가 부족해 몇명만 부상을 당해도 스타팅 멤버 구성이 어렵고, 외국인 선수를 둘 수도 없다.

이강조 상무 감독은 "그래도 올해는 반드시 탈꼴찌를 할 것"이라고 한마디 했다. 1990년 팀을 맡은 이래 올해로 20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이 감독은 4급 군무원 신분이다. 군무원 정년이 3년 남았다.

새로 합류한 이병들의 화려한 면면이 이 감독의 꼴찌탈출 꿈을 부추기고 있다.

A매치 23경기 출전의 최성국과 울산현대의 막강 수비진을 이끌던 박병규, 국가대표 출신 최원권 등이 '불사조'의 일원이 됐다. 불사조는 상무팀을 상징하는 마스코트이다. 김명중·고슬기 등 '고참'들과 호흡이 잘 맞는다면 상무가 올 시즌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녀시대에 열광, PX에서 간식

K리그 15팀 중 유일하게 해외 전지 훈련을 떠나지 않은 상무는 22명이 지난 3일 기초 군사훈련을 마친 이병이고, 지난 시즌을 뛴 상병이 21명이다.

상무팀 이병에게는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가 있다. 자대 배치 후 2주쯤 지나면 특유의 '신고식'을 해야 한다. 올해도 이병들은 지난 15일 광주 충장로 한복판에서 찌그러진 페트병을 콧바람으로 펴고, 생양파를 씹어먹는 코믹 '차력 쇼'를 했다. 시민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박병규는 "부끄러웠지만 한바탕 쇼를 하고 나니 내가 군인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상무팀은 축구 선수 이전에 군인이다. 여성그룹 '소녀시대'가 브라운관에 뜨면 열광하고, PX의 군것질을 낙으로 꼽는다. 지난 시즌 7골을 터뜨리며 맹활약한 김명중 상병은 "장마철에 무섭게 자라있는 풀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했다. 여름이면 제초를 하고, 겨울이면 눈을 치운다. 국군체육부대장이 경기장을 찾는 날이면 선수들의 의지는 불타오른다. 이길 경우, 특별 외박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자가 상병들에게 '제대 얼마 남았느냐'고 묻자, "240일!"이란 우렁찬 답변이 돌아왔다. 그들은 군인이었다.

◆제2의 조원희·이동국 꿈꾼다

상무에서 스타 탄생을 꿈꾸는 선수도 적지 않다. 올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위건에서 뛰게 된 조원희는 상무에서 꽃을 피운 대표적 선수다. 또 이동국은 상무에서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 상무에 어지간한 축구팬들이 이름을 아는 선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아직 K리그에서 빛도 보지 못한 선수 대부분은 상무를 '기회의 땅'으로 부른다.

2005년 포항에 입단, 2군을 전전하던 고슬기는 지난 시즌 상무에서 K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28경기(3골)를 뛰었다. 그는 "상무에서 살아남으면 전역 후에도 기회가 생긴다"며 각오를 다졌다. 무명의 상무팀 선수들은 "상무에서 이룬 활약으로 '쨍' 하고 볕든 이동국과 조원희가 우리 목표"라고 말한다. 상무 선수들은 '제2의 이동국' '제2의 조원희'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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