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섭, 아무리 웃으려해도… 그의 가슴은 울고 있었다

조선일보 기자I 2008.08.26 08:25:55

"기관지 파열로 8강전 못뛴다고했을때 눈앞이 캄캄
죽어도 뛰겠다 했건만 이제 다 지난 일"

[조선일보 제공] 역대 최다인 13개의 금메달을 따고 돌아온 한국 올림픽 선수단이 떠들썩한 환영 속에 개선한 25일 오후, 백종섭(28)은 건국대학교 병원의 한 병실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올림픽 소식이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TV 소리를 뒤로 하고 백종섭은 애써 웃어 보였다. "이제 다 지난 일이잖아요. 생각하면 마음만 아프죠."

열흘 전 그는 베이징에서 포효했다. 돌보다 단단한 복싱 60㎏급 올림픽 대표였다. 부전승으로 32강을 통과한 뒤 16강전에서 태국의 난적 피차이 사요타를 10대4로 가볍게 물리쳤다. 경기가 끝난 뒤 백종섭은 무어라고 소리쳤다. TV중계로 지켜보던 팬들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가 궁런(工人)체육관에서 외친 내용은 "민주 파이팅! 백민주 파이팅!"이었다.

백민주. 아테네 올림픽이 열리던 2004년 태어난 백종섭의 딸이다. 어느새 4살이 된 딸 민주에게 백종섭은 늘 '미안한' 아빠였다. 몸이 아파 자주 병원 신세를 져야했던 딸을 베이징올림픽 준비를 하느라 제대로 보살펴주지도 못했다. 베이징으로 떠나기 전 집을 찾은 백종섭이 "아빠가 뭘 해줄까"라고 묻자 민주는 "다치지 말고 건강히 돌아오고, 꼭 엄마 목에 메달을 걸어주라"고 했다.

병상의 백종섭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백종섭은 아직도 현실이 믿겨지지 않는다고 했다. "16강전 후 늦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깍두기를 먹는데 느낌이 이상했어요. 가슴 속에 큰 덩어리가 있는 느낌이었죠." 그날 저녁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를 받았지만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8강전 전날인 18일 백종섭은 의무실로 불려갔다. 천인호 대표팀 감독은 백종섭에게 "더 이상 뛸 수 없겠다"고 했다. 눈 앞이 캄캄해졌다. 8강전만 넘으면 목에 거는 동메달은 20대 후반의 그가 병역 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메달을 딴 뒤 태권도 선수 출신의 아내 차문이(28)씨와 태보(태권도와 복싱을 혼합한 운동) 체육관도 차리고, 늦었지만 면사포도 씌워줄 요량이었다.

"코 앞에 있던 꿈이 단숨에 달아나더라고요. 미처 잡을 틈도 없이…."

기관지가 찢어졌다는 진단이었다. 16강전에서 상대 펀치에 목을 얻어맞은 결과였다. 폐에서 나온 공기가 파열 부위로 새어 나와 심장을 비롯한 여러 장기를 압박하고 있었다. 과격한 운동을 할 경우 생명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감독님께 '죽어도 좋다'는 각서를 쓰고 링에 오르겠다고 했어요. 울면서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었죠. 감독님인들 저처럼 메달에 대한 미련이 없으셨겠어요? 다 저를 보호해 주시려고 그러신 거죠."

백종섭은 결국 기권을 해야 했고, 21일 먼저 귀국했다. 휠체어를 타고 입국장을 빠져 나오는 아빠를 딸 민주가 맞았다. 민주는 "아빠, TV에서 봤어. 내가 응원했다. 메달 필요 없으니 얼른 낫기나 해"라며 오히려 아빠를 위로했다.

백종섭은 병실에서 후배 김정주(69㎏급)의 경기를 지켜보며 또 한번 울었다고 했다.

"제가 먼저 떠날 때 정주가 '형의 한을 꼭 금메달로 풀어주겠다'고 했어요. 정주의 손등 뼈에 금이 간 걸 저도 알고 있었어요. 그런 정주가, 때리면 자기 손이 더 아픈 정주가 정말 처절하게 경기를 하는 걸 보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군요."

백종섭은 3주 정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할 예정이다. 올해 말이면 아내와 딸을 두고 군에 입대해야 한다. 백종섭이 군에 입대하고 나면 당장 남은 가족의 생계도 막막한 상황이다.

"그래도 글러브를 낀 뒤로 가장 큰 성원을 받은 날들이었어요. 행복했던 만큼 더 많이 아팠던 올림픽이었던 셈이죠. 메달만 땄더라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텐데…."

링거를 꽂은 채 애써 웃던 복서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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