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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백호 객원기자] 전준호(이하 투수)와 이상렬은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으로 옮겼다. 장성호와 최기문은 주전 자리를 얻을 수 있는 팀으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 이는 현행 FA 제도의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현상이다.
전준호와 이상렬은 원소속팀 히어로즈가 자유계약선수로 풀어 버렸다. 어느 팀이든 이들을 공짜로 데려갈 수 있었다. 그래서 전준호는 SK로, 이상렬은 LG로 가게 되었다. 둘 모두 올해의 연봉을 고스란히 보전 받았다.
반면 장성호와 최기문은 FA 자격을 얻어 FA가 되었다. 원칙적으로 이들은 어느 팀으로든 갈 수 있지만, 이들을 데려가는 팀은 원소속구단에 보상선수와 보상금으로 무거운 보상을 해야 한다.
따라서 실제로는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이들이 전준호나 이상렬처럼 올해 연봉을 그대로 받겠다고 해도 새로운 팀을 구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얼마나 불합리한 상황인가. 전준호와 이상렬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 탓에 원소속구단으로부터 사실상 쫓겨났다. 반면 장성호와 최기문은 원소속구단으로부터 이용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오랫동안 뛰어 제도적으로 보장된 FA 자격을 얻었다.
그런데 본인이 원하는 팀을 선택할 권리는 사실상 전준호와 이상렬만 누리고 있다. ‘직업(구단) 선택권 보장’이라는 FA 제도의 근본적 취지를 생각하면, 야구를 못하는 편이 더 낫다는 역설이 성립할 판이다.
FA 선수에게 실질적인 팀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여론은 높으나 사실상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우리 현실에서 보상금 및 보상 선수를 없애거나 줄이기는 어렵다. 돈 많은 구단의 전횡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가치가 비교적 낮은 FA에게는 보상금이나 보상 선수를 줄여주는 것이 좋겠지만, 그 ‘가치’를 가를 기준이 마땅치 않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외부 평가기관이 FA 선수들의 등급을 나누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와 같은 공인된 기관이 없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의 평가 방식 자체도 끊임없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성적을 기준으로 FA 선수들의 등급을 매기는 건 여러모로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 필자는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현행 FA 제도를 유지하되, 보상 선수와 보상금이 없는 예외를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금전적인 이익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팀으로의 이적만을 원하는 FA 선수에게는 원소속구단으로의 보상이라는 짐을 덜어주자는 이야기이다.
구체적으로, FA 자격을 얻은 선수가 일반적인 FA와 구별되는 ‘무보상 FA’ 선언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무보상 FA 선수는 다른 팀과 계약할 경우 계약금을 받을 수 없고, 연봉도 전년도 연봉만큼만 받을 수 있다. 즉 해당 선수의 연봉은 잘해야 동결되는 것이다.
대신 무보상 FA 선수를 데려가는 팀은 원소속구단에 어떤 보상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무보상 FA 선수는 나머지 7개 구단 중 자신이 가장 원하는, 또는 자신을 가장 원하는 팀을 홀가분하게 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대안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뻔뻔한 거짓말이 공식화되어버린 현재 FA 시장이 투명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 FA 선수의 계약금, 계약기간, 연봉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러면서 무보상 FA 선수들에게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
‘무보상 FA’는 금전적인 이익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소수의 선수들만이 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 소수의 선수들도 팀 선택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해마다 시장 가치가 낮은 베테랑 선수들이 대거 FA 선언을 포기한다. 이 중 많은 경우는 FA 보상제도 때문에 사실상 다른 팀에 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무보상 FA 제도는 미국이나 일본에도 없는 방안이다. 상대적 가치가 낮은 FA 선수가 다른 팀으로 옮겨 좀 더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여러모로 유익할 것이다. 무보상 FA 제도가 완벽한 대안일리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진지한 접근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