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롯데 자이언츠가 남편이라면, 무능한 남편이지만 남이 욕하거나 무시하는 건 또 싫은, 그런 남편이랄까요. 화를 내면서도 절대 떠날 수 없는 그런 남편 말이죠."
권상준(36) 감독은 "왜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유독 열광적인가"라는 질문에 "솔직히 잘 모르겠다"며 그렇게 비유했다. 그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팬들과 선수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나는 갈매기'를 찍어 개봉했다. 개봉 후 2주가 지난 이 스포츠 다큐멘터리는 전국 57개 스크린밖에 확보하지 못했음에도 그새 관객 9만3000여명을 끌어모았다. 지난 2003년 야구 성적과 관중 동원 성적이 모두 8개 구단 중 꼴찌였던 롯데 자이언츠는 작년과 올해 연속으로 관중 동원 성적 1위를 기록했다. 올해 부산 사직야구장 스탠드를 채운 사람은 총 138만명을 넘어 프로야구 사상 최다 관중 동원 기록을 깼다. 정규리그 성적이 올해 4위, 작년 3위인 팀이 관객을 가장 많이 동원했다는 사실에서 이 다큐멘터리는 출발했다.
"부산에서는 야구팬들을 찾기가 무척 쉬웠어요. 야구라고 하면 두세 시간씩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들이죠. 그런 분들이 '나보다 더 야구 좋아하는 사람 있다'며 다른 분을 소개해주곤 해서, 팬들 찾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의 영화에는 롯데 선수들의 성적을 줄줄 외는 70대 할머니도 등장한다. TV 야구 중계를 보기 전에 신경안정제를 한 알씩 먹는다는 이 할머니는 역시 야구광인 버스 운전기사의 어머니였다. "버스·택시기사들 중에 야구팬들이 많다고 해서 찾아갔었어요. 그런데 한 기사님이 '우리 어머니는 작년에 롯데 경기 한 게임도 안 빼고 다 본 야구광'이라고 소개해 주셨죠. 인터뷰가 늘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어요."
서울 출신인 권 감독은 열혈 야구팬은 아니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 초등학교 2학년이었고, 그때 다른 모든 아이들처럼 서울팀이었던 MBC 청룡의 팬으로 시작해 LG트윈스 팬으로 갈아탔으나 나이 들면서 시들해졌었다. 그는 지금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 돼버렸다"고 했다. "지난 2월 사이판 전지훈련부터 찍기 시작해서 7월까지 롯데 경기만 50게임쯤 따라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롯데 팬이 되더라고요."
이 다큐멘터리의 기획은 제작사가 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7년 '투수, 타자를 만나다'라는 18분짜리 단편영화를 찍은 바 있는 권 감독이 '나는 갈매기'를 찍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투수가 공 하나를 던지기까지의 심리를 묘사한 '투수, 타자를 만나다' 이후 그는 '서울유나이티드, 이제 시작이다'(2008)라는 축구 다큐멘터리도 찍었다. 이 작품은 아마추어 리그 팀인 서울유나이티드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권 감독은 "서울유나이티드가 그럴듯한 프로팀이 될 때까지 계속 시리즈로 찍고 싶다"고 말했다.
"스포츠에는 에너지가 있어서 좋습니다. 선수도 그렇고 팬들에게도 에너지가 넘치지요. 특히 선수들은 10~20년간 쓸 에너지를 몇 년 안에 응축해서 쏟아야 해요. 그런 모습에 감동하게 되고, 많이 끌렸어요."
올해 정규리그 전 시범경기에서 1등을 했을 때만 해도 롯데 팬들은 "올해 롯데가 일 낸다"고 했었다. 그러나 정작 리그가 시작되자 롯데는 맥을 못 추고 연패의 늪에 빠졌다. "그때 정말 촬영하기 힘들었어요. 행여나 저희 때문에 성적이 나빠질까 봐 무척 조심스러웠죠." 지난 4월 말 롯데 주장 조성환이 투구에 얼굴을 맞아 큰 부상을 입는 장면은 '나는 갈매기'에서만 볼 수 있다. 당시 게임 중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팀은 계속 지고 주장마저 다치자 화풀이할 곳이 없는 선수들은 의자와 쓰레기통을 발로 걷어차고 고함을 지르며 울분을 터뜨린다. "그때 선수와 팬 모두 굉장히 답답해할 때였거든요.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85분짜리 영화를 만들기 위해 그가 찍은 분량은 약 400시간. 2만4000분에서 2만3915분을 들어내는 편집 과정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고 했다. 권 감독은 그러나 "한 명의 롯데 팬이 되고 한 마리 갈매기(롯데 팬의 애칭)가 됐다는 게 정말 기쁘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