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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영화 '불신지옥'(감독 이용주, 제작 영화사 아침)은 역으로 믿기 때문에 지옥이 되는 세상을 그린다.
교회에 다니는 엄마(김보연 분)는 교통사고 후 신기가 들린 둘째딸 소진(심은경 분)이 구세주가 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엄마의 맹신이다. 소진의 아파트 이웃 주민들은 소진이 구세주가 아닌 영험한 소녀무당으로 믿는다. 이 역시 맹신이다.
'불신지옥'으로 데뷔한 이용주 감독은 우리사회에서 유독 유별난 '믿음'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이 작품을 만들었다. 여기서 믿음은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일부 기독교 신자들의 그 믿음일 수도 있고 옥황상제와 조상님께 기복을 발하는 무속신앙의 그 믿음일 수도 있다.
의심을 거두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거나 혹은 복을 받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믿음은 결국 우리의 심약한 본질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믿음이 자칫 타인을 지옥으로 몰아 넣는다는 점이다.
본인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 맞닿았을 때, 그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기보다 무언가 '초자연적인 힘'에 기대어 그 상황을 극복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다. 그 심리에는 종종 나를 위해 타인을 희생해도 좋다는 이기심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이용주 감독은 그 지점을 ‘불신지옥’에서 발생하는 공포의 발아점으로 삼았다. 소진을 죽음으로 내모는 엄마나 이웃 주민들 모두 '맹신'을 공통 분모로 하고 있다. 이 감독은 영화 속 맹신에 빠진 인물들을 통해 관객들 스스로 자신들의 심리적 취약점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 취약점이란 다름 아닌 우리 스스로의 탐욕과 이기심이다. 화면 속 이웃 주민들과 소진 엄마의 맹신은 결국 소진에게 ‘지옥 같은 세상’ 속에 살도록 만들었다.
영화는 사람들 내면에 있는 이기심과 탐욕을 환기시키며 어느 순간 주변을 서늘하게 만든다. 내 스스로 누군가에게 ‘지옥 같은 세상’을 살도록 강요하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조용하지만 치밀하고 꼼꼼하게 보여주고 있어서다. 거기에는 소진의 언니 희진으로 분한 남상미를 비롯해 김보연, 심은경, 류승룡 등 배우들의 호연도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더운 여름 갈증을 해소하는 시원한 맥주처럼 톡 쏘고 알싸한 공포를 원하는 관객들에게 '‘불신지옥'은 김이 빠진 맥주처럼 느껴질 수 있다.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감각적이고 잔인한 공포영화와 ’불신지옥‘은 거리가 있어서다. 대신 차분한 공포영화를 즐기고 싶은 관객들은 신인 이용주 감독을 믿어도 손해 보지 않을 것이다. 12일 개봉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