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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들의 친구 야구] 소심한 토리와 다저스 보급대

한들 기자I 2008.05.06 09:32:34
▲ 조 토리 감독 [로이터/뉴시스]

[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싸움은 늘 상대적입니다. 내가 있고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대적이란 법칙이란 통할 수 없습니다. 상대에 따라 그것을 어떻게 응용· 응변 하느냐가 승리의 요체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손자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고, 적을 알고 나를 모르면 승과 패를 주고받을 것이며, 적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반드시 패한다고 했습니다. 일본 프로야구서 잔뼈가 굵은 백인천 전 삼성 감독은 “내가 쉬우면 상대도 쉽고, 내가 힘들면 상대도 힘든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지난 2일 콜로라도전서 생뚱맞은 일이 다저스 불펜에서 벌어졌습니다. 11-6으로 크게 앞선 9회 박찬호가 계속 던지고 있는 가운데 마무리 사이토 다카하시가 몸을 푼 것입니다.

마지막 한 이닝을 남겨 놓고 5점의 대차에 사이토를 대기시킨 것을 의아해 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조 토리 다저스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는 쿠어스필드다. 이 구장에서 4~5점차는 세이브 상황이다.”

토리 감독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쿠어스필드는 고지대에 위치해 공기의 밀도가 낮아 홈런이 많이 나옵니다. 더욱 경기도 중반까지 다저스가 0-3으로 뒤진 6회 7점, 콜로라도가 7회 3점, 다시 다저스가 8회 4점 등 원 찬스에 대량 득점을 주고받는 난전이었습니다. 여기에 8회부터 나온 박찬호가 연속 안타를 맞는 등 일말의 불안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토리 감독의 사이토 대기는 적을 모르고 자신에게만 골몰한 소심함이 더 컸습니다.

당시 콜로라도는 다시 5점차로 벌어지자 이미 주전들을 교체하고 타월을 던진 뒤였습니다. 물론 감독만이 느낄 수 있는 ‘감’이란 게 발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 감은 최강의 멤버로 월드시리즈를 4번 우승한 감독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토리 감독은 다음 날 경기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자 아예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12-7로 앞선 9회 사이토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납득하기 어려운 투수 핸들링이었습니다. 3회 1사 2루서 구원 등판한 궈홍치가 나오자마자 동점 투런 홈런을 맞긴 했지만 이후 3.2이닝 5탈삼진으로 호투하고 있었는데 7회 교체하면서 빚어진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궈홍치의 투구수는 42개로 부담스러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다저스는 플로리다 원정서 두 차례 세이브를 하고 콜로라도로 날아온 사이토를 이틀간 낭비한 꼴이었습니다.

토리 감독은 연승가도를 달리는 마당에 바둑에서처럼 확실한 현찰을 챙기고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둑은 한판으로 끝나고, 야구는 앞으로도 130판을 더 둬야합니다.

불펜 투수는 군대로 치면 보급대입니다. 로마군은 보급대를 가장 중요하게 관리하면서 승전고를 울렸습니다. 욕심은 많지만 소심한 장군이 이끄는 다저스의 보급대가 얼마나 오래 버텨낼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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