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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억 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한국영화 사상 최대 규모다. ‘괴물’의 송강호와 고아성을 첫 번째 승객으로 맞았고 이후 틸다 스윈튼을 시작으로 존 허트, 에드 해리스, 크리스 에반스, 제이미 벨, 옥타비아 스펜서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하나둘 열차에 올라탔다. 영화를 구상하는데 5년, 작업에만 3년 반. 그렇게 공을 들인 영화가 오는 8월1일 드디어 출발한다.
2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은 그의 영화만큼이나 ‘유니크’했다. 왼쪽 팔과 가슴에는 전에 없던 나무에 비둘기 한 마리가 들어앉았다. 나무는 한쪽 가슴을 다 차지할 정도로 컸고 잎까지 푸르렀다. 영화 ‘마더’에서 특히 좋아했던 김혜자의 나무가 떠올라 문신으로 새겼다. “신작 ‘설국열차’가 미국에 개봉할 즈음이면 오른쪽 손목 위에 조그맣게 윌포드(열차의 창조자이자 절대자)의 ‘W’ 마크를 하나 더 새길지 모르겠다”며 눙쳤다. 그는 능변가였다. 힘들었다 말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고, 자칫 심각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재치 있게 전했다. 흡사 보편적이지만 대중적이진 않은 그의 작품들 같다.
신작 ‘설국열차’는 봉 감독의 과거 그 어떤 영화들보다 복잡하다. 영화는 가진 자와 가난한 자,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를 ‘엔진칸’과 ‘꼬리칸’의 사람들로 대치해 강요된 질서에 순응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틀을 깨고 과감하게 앞으로 돌진할 것인가 묻는다. 그 속에는 ‘희망’과 ‘절망’이 마치 뱀이 똬리를 틀듯 엉켜 있다. 봉 감독은 “탈출에 관한 영화다”라고 ‘설국열차’를 정의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죠. 영화에서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가 억압받는 꼬리칸에서, 남궁민수(송강호 분)가 답답한 감옥칸에서 벗어나려고 하듯 말입니다. 크게 보면 기차 자체가 거대한 감옥일 수 있어요. 기차 안 사람들은 어렵게 살아남지만, 그 좁은 세상에서조차 그들은 피를 튀기며 싸웁니다. 서로 살육하면서요. 그 모습이 슬프지만 어쩌면 그것은 인간 본연의 모습일지 몰라요. ‘설국열차’는 안주하고 싶지만 동시에 벗어나길 바라는 인간 본성에 관한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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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매력은 세계적인 명배우들의 연기 열전이다. 천의 얼굴을 지닌 듯한 틸다 스윈튼을 비롯해 존재 자체만으로 영화에 묵직함을 더하는 존 허트, 에드 해리스, 우리 배우 송강호와 고아성까지 출연 배우 모두가 정확히 감독이 제시한 위치에서 흐트러짐 없이 제 역할을 해낸다.
‘설국열차’는 1년에 한 번 정확하게 지구를 순환한다. 영화가 그와 같다면 봉 감독은 옴니버스 영화 ‘도쿄!’(2008)를 제외하고 ‘플란다스의 개’(2000)부터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까지 다섯 바퀴를 돌았다. 그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로 향할까. 봉 감독은 뜻밖에 ‘세계화’에 대한 욕심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오히려 “최근 한국영화가 한류, 혹은 세계재패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글로벌은 이미 현실이 됐고 문화는 즐기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구체적인 목적지는 없어도 생각하는 방향은 확고하다.
“저의 관심사는 늘 ‘영화’와 ‘인간’이었어요. 영화란 무엇인가. 어떠한 것이 진정 영화다운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나. 앞으로도 이같은 물음은 계속해서 하게될 것 같아요. 이야기에 따라 움직일 겁니다. 프랑스 만화가 저를 충동질해 ‘설국열차’를 만들었듯 저를 자극하는 소재, 이야기가 있다면 그곳으로 가야죠. 거기가 한국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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