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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뇌가 섹시한 낸시랭, "천재란 소문, 들어보셨죠?"

고규대 기자I 2013.01.14 08:43:26

대중과 소통 바라는 팝아티스트.."제 자체가 작품의 하나"
촌철살인 뉴스 코멘트 등 용의주도한 고민 끝에 나온 결과
"연예인이 아닌 연예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로 불러달라"

팝아티스트 낸시랭.(사진=낸시랭 제공)
[이데일리 스타in 고규대 기자]“그럼, 그날 봐요, 앙~~~”

문자 메시지에 적힌 글을 읽고 있으니, 실제로 듣는 것처럼 ‘음성 지원’이 된다. 가끔 윙크를, 가끔 하트 모양을 날리는 그녀의 모습이 겹쳐진다.

낸시랭. 어깨에 고양이 인형 하나를 올려놓고 재치를 내보이는 ‘팝아티스트’다. 어떤 이는 그녀의 삶이 솔직하다고 칭찬하고, 또 어떤 이는 그녀의 표현이 ‘닭살’ 돋게 만든다고 폄훼한다. 기실 예술가란 평판에 굴곡이 있을 터. 게다가 그녀처럼 규정하기 힘든 이도 없다. 추상적인 예술에 반발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팝아트의 특성상 그녀의 예술은 ‘낯섦’으로 다가온 게 아닐까?

1월의 어느 금요일 밤. 서울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낸시랭은 TV 속 화면과 달랐다. 일정이 밀려 10시 가까운 시간에 만난 탓일까? 표정에서 다소 세월의 더께가 느껴졌다. 외양 또한 가벼운 기초 화장 정도로만 꾸며 막 마실 나온 동네 처녀처럼 보였다. 어깨 위 고양이 인형도 사라졌다.

“아~ 오늘 피곤할 하루였어요. 해야할 일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고. 참, 얼마전 SBS 시상식 퍼포먼스 보셨어요? 어땠나요?”

대화는 자연스럽게 요즘 궁금증으로 넘어갔다. 낸시랭은 지난달 31일 열린 ‘SBS연기대상’시상식에서 퍼포먼스를 펼쳐 화제가 됐다. 고양인 인형을 한 손으로 들고 중심을 잃었다 다시 일어나는 설정이었다. 한 대만 언론은 낸시랭의 퍼포먼스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슈화하기 위한 설정’이었다고 보도하는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

“티나게 한 퍼포먼스였는데, 그걸 이해못한 사람도 있었나봐요. 한가지 비밀을 알려드릴까요? 그 퍼포먼스는 프로그램 제작진의 요청으로 이뤄진 거예요. 전날 리허설도 했는 걸요. 넘어졌다 일어나면서 ‘힘내자’는 외침도 있었고요.”

낸시랭의 이날 퍼포먼스는 하나의 메타포(metaphor·은유)였다. 학자금 대출, 실업률 증가, 스트레스 누적 등 힘든 게 많은 요즘이다. 자칫 넘어지기 쉬운 현실이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 바로 일어나 힘내자는 의미를 담았다.

팝아티스트 낸시랭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상암동 SBS 프리즘타워에서 열린 ‘SBS 연기대상’에서 넘어지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권욱 기자)
낸시랭은 ‘아이 러브 달러(I Love Dollar)’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가끔 그녀의 표현을 들으면 직설적이어서 귀에 거슬린다는 이도 있다. 반대로 거슬리는 귀를 가진 이는, 뭔가 욕망을 숨기고픈 내면을 가진 이인지도 모를 일이다.

“자본주의의 살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게 있잖아요. 개인적으로 상상하고 구현하고 싶은 작품들이 있어요. 하이퀄러티 재료와 네트워크로 하이퀄러티 작품을 만드는 게 저 같은 아티스트의 꿈이죠. 그러기 위해선 자본이 많이 필요하죠. 돈을 현실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낸시랭은 외롭다고 말한다. 대학원 졸업할 당시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보냈고, 17년 동안 암 투병하시던 어머니는 지난 2009년 2월 세상을 떠났다. 외할머니마저 그 후로 1년 돌아가셨다.

“지난해 동생도 천국으로 갔어요. 강아지 폴 랭. 다 갔어요. 외로워요. ‘아트’로 달래야죠. 나를 사랑하는 친구, 지인과 달래야죠. 물론 음주가무가 빠질 수 없죠. 가장 큰 힘을 주는 건 하나님이에요.”

낸시랭의 트레이트마크인 ‘큐티섹시키티’라는 말도 신앙에서 비롯됐다. “하나님께 애교를 어떻게 부릴까 고민하다 만들어냈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 또 다른 의성어 ‘앙’은 지난해 4.11 총선 때 만들어낸 의성어란다. 낸시랭은 “‘앙’은 ‘젊음의 에너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팝아티스트 낸시랭이 지난 2012년 4.11총선 당시 ‘앙’이라는 글자가 쓰인 피켓과 비키니 차림으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저는 이 세계, 저 세계를 넘나들어요. 저는 하나님이 두 가지 삶을 준 게 감사해요. 어차피 지구에서 얼마 못살잖아요. 지구에서의 삶을 봤을 때 전 가족이 없는 고아 같은 거죠. 그런 맥락에서는 별로 삶의 의미는 없어요. 지구의 삶은 의미없죠. 다행히 하나님이 지혜와 촉명을 주셔서 우매하게 행동하지 않죠. 하지만(몇 초 동안 숨을 고르더니) 아티스트로는 살아야겠죠.”

낸시랭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얼굴에 생기가 돌고, 목소리 톤도 높아졌다. TV 속 낸시랭으로 점차 변해갔다. “맹하게 보이는 게 설정이냐”고 묻자 대뜸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낸시랭 천재설’을 몰라요?”라고 되묻는다. 낸시랭은 짐짓 모르는 채 표정을 숨기는 화법으로 평론가 변희재와 토론을 펼쳐 네티즌에게 화제가 됐고, 한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읽고 코멘트를 하는 ‘뉴스앤톡’으로 회자된 적 있다. ‘‘노인폄하’ 정동영 또 “꼰대에 인생 맡길래” 트윗’라는 기사를 놓고 “꼰대는 나이랑 상관없어요.” (12월15일자) ‘朴-文 마지막 TV토론서 난타전…신경전 최고조’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고 “엄마. 굶어도 좋으니 아빠처럼 패지만 마. ~~~앙~~~!”(12월16일자) 등의 글도 썼다. 논쟁은 커졌고, 댓글은 폭발했고, 악플도 쏟아졌다.

“전 뇌가 섹시한 사람이 좋아요. 똑똑한 사람, 머리 좋은 사람은 많죠. 하지만 획일적인 거 같아요. 여러가지 재능이 우리에게 있잖아요. 사랑과 평화와 위트가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뇌가 섹시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짧은 글이지만 두 세 시간 동안 관련 뉴스를 꼼꼼히 읽어보고 주제를 정하곤 했어요. 물론 논쟁을 의도한 것도 있죠.”

낸시랭은 자신을 대중과 소통하는 아티스트이기를 바란다. TV에 나온다고 연예인이라는 말은 아니다. 낸시랭은 자신을 연예 활동을 하는 ‘연예인 형 아티스트’로 설정했다. TV 출연, 시상식에서 펼친 퍼포먼스 등도 모두 그녀의 아트 활동 중 하나다.

“저는 제 자체를 작품으로 규정하고 싶어요. ‘걸어다니는 팝아트’라고 할까요? 저의 꿈은 전 지구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는 게 꿈이에요. 그걸 통해 부와 명예를 한 손에 갖는 거죠. 그렇게 된 후에 우리나라를 런던, 파리 같은 디자인 도시로 만들고 싶어요. 너무 꿈이 거창하다고요? 꿈은 크게 가져야죠. 앙~~~ 하하.”



낸시랭은…

팝아티스트 낸시 랭(Nancy Lang·한국 이름 박혜령·1979년 3월 11일 생)은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한국에서 마친 후 필리핀의 마닐라 국제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동대 서양화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당시 한국 대표로 참가하지 못하자 산 마르코 성당 앞에서 속옷 바람으로 바이올린 연주 퍼포먼스를 펼쳐 화제가 됐다. 작품명은 ‘초대받지 않은 꿈과 갈등: 터부 요기니 시리즈’였다. 2010년 6월 영국 런던에서 엘리자베스 2세의 생일 퍼레이드에 맞춰 ’거지 여왕‘ 복장으로 런던 시내 곳곳을 누비는 퍼포먼스도 펼쳤다. 저서로는 ’아티스트 낸시 랭의 비키니 입은 현대미술‘(2006년) ’난 실행할거야‘(2010년) 등이 있다. 지난 1월초에 막을 내린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에서 주연을 맡아 배우로도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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