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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상화’로 기대를 모으는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기대주 김민선(19·의정부시청)이 평창의 아쉬움을 딛고 다시 스케이트 끈을 질끈 묶었다.
김민선은 지난달 26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전국 남녀 종목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여자 500m 1, 2차 레이스 모두 1위를 차지했다. 1차 레이스에서 39초43을 기록한데 이어 2차 레이스에선 39초00으로 기록을 더욱 앞당겼다.
이 대회는 2018-201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파견선수 선발전을 겸해서 치러졌다. ‘빙상여제’ 이상화(29·스포츠토토빙상단)가 이번 시즌 국제대회에 나서지 않기로 하면서 김민선에게 쏠리는 기대는 더욱 커지고 있다.
김민선은 지난해 9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ISU 인터내셔널 폴 클래식 여자 500m에서 37초78을 기록, 2007년 이상화가 세웠던 주니어 세계신기록(37초81)을 0.03초 앞당겨 세계 빙상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ISU는 대회 조직위원회가 경기 당일 도핑검사를 실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록을 인정하지 않다가 뒤늦게 세계신기록으로 인정했다.
김민선은 단숨에 평창 동계올림픽 기대주로 급부상했다, 내심 깜짝 메달까지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올림픽을 일주일 앞두고 예상치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극심한 허리 통증이 그를 괴롭힌 것.
몸을 앞으로 숙이지도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각했다. 컨디션을 섬세하게 조절할 시기에 나흘 동안이나 스케이트 연습을 하지 못했다.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나섰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38초53으로 순위는 16위. 김민선 본인도 레이스를 마치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민선은 평창에서의 아쉬운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당시 레이스를 마치고 너무 허무했고 ‘이게 뭐지’라는 생각까지 들었어요.시합을 잘 탔다면 홀가분하고 뿌듯했을텐데 그때는 몸이 아프다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평창에서 안좋은 경험만 한 것은 아니다. 국민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면서 국가대표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직접 느꼈다.
“아쉽다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들기는 했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었잖아요. 정말 다시 못 느낄 분위기였어요. 아프긴해도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니 기분이 좋더라구요. 외국에서 경기할 때는 누군가 내 이름을 한국말로 부르며 응원해준 적이 없었거든요”
실망은 잠깐이었다. 김민선은 올림픽이 끝나자 마자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치료와 재활에 전념하는 동시에 허리 근육을 강화하는 코어 운동법을 직접 배웠다.
“시즌이 끝난 뒤에도 허리를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요. 아직 100% 만족할 컨디션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지금도 계속 보강·재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김민선은 얼음판 위에선 매서운 눈빛으로 놀라운 스피드를 자랑한다. 마치 한 마리 맹수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얼음판을 벗어나면 작은 농담에서 웃음보가 터지는 10대 소녀다. 올해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다.
김민선은 대학 진학 대신 실업팀 의정부시청 입단을 선택했다.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하기 위해 운동에만 전념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에서다. 제갈성렬 의정부시청 감독의 헌신적인 지원은 김민선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0살이 됐는데 고등학교 때와 크게 달라진건 없는거 같아요. 물론 친구들이 대학교에 다니면서 생활하는게 부럽기도 해요. 나도 언젠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학교 다니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잖아요. 우선은 운동에만 전념하고 싶어요”
김민선은 운동 시간이 아닐 때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최근에는 드라마 ‘뷰티인사이드’를 재밌게 보고 있다고. ‘남자 주인공 이민기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냐’고 묻자 “그냥 재밌어서요”라고 말을 돌리며 활짝 웃었다.
김민선은 16일부터 일본 오비히로에서 열리는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에 출전한다. 올해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은 내년 3월까지 총 6차 대회로 치러진다. 일본(1·2차)을 비롯해 폴란드(3차), 네덜란드(4차), 노르웨이(5차), 미국(6차)에서 개최된다.
김민선의 목표는 일단 소박하다. 메달권에 진입을 노리기보다 컨디션을 회복하면서 천천히 순위를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그동안은 우상인 이상화를 바라보면서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제는 오전히 자신의 힘으로 대회를 치르고 경쟁해야 한다.
김민선은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은 별로 없어요. 그냥 내 기록을 내는 것에 신경쓰고 있어요”라며 “올시즌은 허리 부상을 잡는데 신경쓰느라 체력을 원하는 만큼 만들지는 못했어요. 대회를 치르면서 차근차근 몸을 만들어 꾸준히 톱10 안에 드는게 목표입니다”고 담담하게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