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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영화관에선 이러한 자막을 자주 보게 될 듯싶다. ‘실화’ 소재 영화가 붐이다. ‘집으로 가는 길’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 ‘변호인’ 등이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
‘세상에 이런 일이….’ 실화 영화에 대한 관심은 대부분 이러한 반응으로 시작된다. 이번에도 ‘부림사건’ ‘장미정사건’ 등 영화 속 실제 사건이 일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며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외화인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는 34년간 모두 8명의 대통령을 모신 흑인 집사 유진 앨런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겼다.
세 작품 모두 대중의 시선을 끄는 데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관객의 평가는 어떨까. 영화적으로도 재밌을까. 사실과 허구 사이, 장단점을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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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외면한 실화가 공개된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 포스터 홍보문구다. 실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주인공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주부. 마약운반범으로 오인되어 대서양 외딴 섬 감옥에 갇히는 주부 정연 역할은 전도연이 맡았다. 감독도 방은진으로 여자다. 가족 관객, 특히 여성 관객 사이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이끌어낼 만하다.
영화는 전도연으로 시작해 전도연으로 끝이 난다. ‘칸의 여왕’다운 연기력으로 극에 사실성을 더하고 몰입도를 높인다.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연출력은 다소 아쉽다. 특히 한국 대사관 직원들을 지나치게 희화하고 남편 종배(고수 분)가 아내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조직 폭력배와 결탁하는 장면 등은 이야기의 진정성을 흐렸다. 장미정이 프랑스 교도소에서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은 영화적 장치로 이해는 가능해도 ‘부러진 화살’ 등에서도 접했던 것으로 새롭지는 못했다.
우리 주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 전도연의 호연에만 기대기에는 2시간11분의 상영시간이 다소 길게 느껴진다.
[그때 그 사건]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장미정 씨는 2004년 10월 남편 후배로부터 원석을 운반해주면 400만 원의 수고비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별다른 의심 없이 비행기에 오르지만, 가방에 들어 있는 것은 원석이 아닌 17kg의 코카인이었다. 프랑스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검거된 장씨는 마르티니크라는 외딴 섬 감옥에 갇혀 2년간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다. 장씨의 사연은 2006년 4월 KBS2 ‘추적 60분’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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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에서 장기 근무한 흑인 버틀러 이야기. 무려 8명의 대통령을 지척에서 보필한 집사가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짜임새 있게 엮어낸 재주는 더욱 놀랍다. 주인공의 이름은 세실 게인즈로, 그가 모신 대통령은 아이젠하워부터로 바뀌었다. 영화는 이 흑인 집사와 그의 가족을 통해 미국의 현대사를 반추한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을 관상가의 눈으로 바라본 사극 ‘관상’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백인들의 신뢰를 얻는 세실, 인종 차별에 끊임없이 항거하는 아들 루이스. 영화는 이렇듯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세실 게인즈 역에 포레스트 휘태커를 비롯해 로빈 윌리엄스, 제임스 마스던, 리브 슈라이버, 존 쿠삭, 앨런 릭맨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의 대통령 연기를 실제와 비교해 보며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가수 머라이어 캐리도 깜짝 출연해 볼거리를 더한다. 지난달 28일, 12월 실화영화 가운데 가장 먼저 개봉했다.
[그때 그 사람] 34년간 8명의 대통령을 수행하며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흑인 집사가 있었다. 유진 앨런은 1952년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을 시작으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린든 B. 존슨, 리처드 닉슨, 제널드 포드, 지미 카터, 1986년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까지 8명의 대통령을 모셨다. 그의 사연은 버락 오바마가 흑인 최초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을 무렵 워싱턴 포스트에 소개되며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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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영화 평점 6.07(11일 네이버 기준). 최하점인 1점과 최고점인 10점이 집중적으로 매거진 결과다. 중간은 없다. 영화 개봉까지는 일주일이 남았지만 2만 3000건이 넘는 평점이 달렸다. 댓글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예찬 또는 욕설로 극명하게 갈린다. 정치 성향에 따라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영화적으로는 허구와 실재를 제법 솜씨 좋게 엮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극 중 주인공 변호사 송우석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다섯 번의 공판은 백미다. 송강호는 명불허전의 연기력을 보여준다. “불세출의 배우를 넘어서 위대한 예인”이라던 양우석 감독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김영애의 뜨거운 모성 연기, 곽도원의 살 떨리는 악역 연기, 오달수의 능청스런 생활 연기 또한 훌륭하다.
제작진의 의도와 상관없이 ‘정치영화’화 돼 버린 것은 부담이다. 이 영화의 개봉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난해 대선일이며 노무현이 당선된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일과 같은 12월19일이다.
[그때 그 사건·사람] 1981년 제5공화국 정권 초기. 신군부는 통치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사회과학독서 모임을 하던 학생,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용공 세력으로 조작해 길게는 63일간 불법 감금하며 물·통닭구이 등 고문을 자행했다. 이를 부산지역 학림(學林)사 건이란 뜻으로 ‘부림사건’이라고 부른다. 당시 부산 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사건의 변론을 맡으며 정치에 눈을 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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