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한들의 친구 야구] 페드로의 '투계'가 뭐 어쨌길래

한들 기자I 2008.03.04 09:21:57
▲ 페드로 마르티네스 [로이터/뉴시스]

[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얼마 전 뉴욕 메츠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곤욕을 치렀습니다. 닭싸움, ‘투계(鬪鷄)’ 때문이었습니다. 2년 전 고국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열린 투계 대회를 구경하는 모습이 무료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 튜브(You Tube)에 떠다니면서 동물보호론자들로부터 융단폭격을 받았습니다.

투계는 잔인합니다. 놓아주자마자 장닭들이 발톱에 단 날카로운 쇠 낫을 휘두르며 한 쪽이 쓰러질 때까지 싸우고 또 싸웁니다. 쇠 낫에 휘둘려 뼈가 부러지거나 폐에 구멍이 뚫려 패자가 널브러지고 나서야 게임은 끝납니다.

여기저기 깃털이 흐트러져 있고, 피 묻은 살점도 드문드문 보이는 그 처참한 현장에서 마르티네스가 태연자약 악마의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 동물보호론자들이 침을 튀길 만도 했습니다.

투계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있습니다. 송영입니다. 1967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 ‘투계’가 바로 그의 데뷔작입니다.

투계에 편집광적으로 빠져 있는 사촌형의 모습을 어린 동생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전개되는 이 작품은 나중에 그를 절망의 나락에서 구해줍니다.

그는 해병대 장교훈련소를 뛰쳐나온 탈영병이었습니다. 수 년 간 도피생활을 하면서 경기도의 한 중학교 선생으로 숨어 살다가 체포됐습니다.

그런데 군인들이 흔히 ‘그 곳에 가느니 차라리 말뚝을 박겠다’고 말하는,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형을 살던 중 은인을 만납니다. 바로 투계를 읽은 군법무관을 만나 석방된 것입니다. 만약 투계란 작품이 없었다면 작가 송영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투계는 송영 뿐만 아니라 여러 예술 작품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습니다. 찾아봤더니 화가 이중섭도 그렸고, 프랑스 어느 화가의 대표작도 그것이었습니다.

남미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수 천 년부터 내려져온 투계는 한국서도 제주도에 지름 180cm, 높이 100cm의 경기장과 1시간 반의 경기 시간 규칙까지 갖춰놓고 행해지고 있습니다. 중국,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인도차이나반도서는 세계 대회까지 열릴 정도로 국제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미국에서도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인기를 누리다가 지금은 48개 주에서 금하고, 루이지애나와 뉴멕시코에서만 합법입니다.

이런데도 동물보호론자들이 구단과 커미셔너에게 항의 편지를 보내면서 법석을 떤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마르티네스도 해명서를 발표했는데요. 그는 “그들을 이해한다. 하지만 투계는 우리나라 문화의 일부”라고 정곡을 찔러 반박했습니다.

동물보호론자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우스꽝스러운 것은 마르티네스의 투계에 대한 미국 언론의 결론입니다. 그들은 문화의 상대성이라면서도 마르티네스가 메이저리그 투수라는 사실을 인식했어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얼토당토 않습니다. 마르티네스가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다만 자기 나라의 전통 문화 행사에 참여했을 뿐인데 무슨 메이저리그 투수라는 점을 의식했어야 한다는 것인가요.

메이저리그의 녹을 먹고 있으니까 고국에 돌아가서도 미국의 허가를 받고 놀아야 한다는 것인가요. 실소를 금치 못할 식민지 논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방주의로 몸을 휘감은 미국이 균형을 잃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구요. 그나마 최후의 보루라는 언론마저 균형의 시소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 관련기사 ◀
☞[한들의 친구 야구] ‘김병현=불펜’의 오류
☞[한들의 친구 야구]한국 평범 투수 김병현과 미국'수퍼'에이전트
☞[한들의 친구 야구] ‘병현 불펜 전용?’ 과연 그렇게 될까
☞[한들의 친구 야구]산타나, 사이토, 케이시 ‘연봉은 history’
☞[한들의 친구 야구]클레멘스-실링 일그러진 백인 영웅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