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9] 울고 간 천재, 야생마, 방랑자들

한들 기자I 2008.02.14 09:08:46
▲ 봉중근

[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12년 전 봄입니다. 서울시 고교야구 춘계연맹전이 열리던 동대문구장서 경기를 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한 선수가 무사 만루에서 번트 동작을 취하다가 강공으로 전환해 밀어쳐 좌중월 2루타를 날리는 것입니다. 고교 선수답지않은 ‘버스터’에 눈이 휘둥그레져 함께 갔던 아마 야구 담당에게 신상명세를 물었습니다. 뒤로 자빠졌습니다. 이제 갓 입학한 1학년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봉중근이었습니다.

봉중근이야말로 ‘미완의 대기’란 말에 가장 어울리는 선수였습니다. 신일고 2학년 때인 97년 캐나다서 열린 세계 청소년선수권대회서 투타에서 맹활약하며 우승을 이끌고 MVP로도 뽑혔습니다. 그 때 일화가 있습니다. 외야에서 캐치볼을 하던 봉중근이 동료를 앉혀놓고 공을 던졌는데 94마일이 찍혔습니다. 결국 그 해 겨울 가장 눈독을 들인 애틀랜타가 몸이 달아 학교를 중퇴시키고 스카우트해 갔습니다.

방망이 소질도 탁월했지만 애틀랜타는 그를 역시 투수로 키웠습니다. ‘투수 왕국’의 황태자로 성장하던 봉중근은 마침내 2002년 데뷔 첫 선발 등판을 하며 빅리그 마운드를 밟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불펜 투수로 44경기를 뛰며 첫 승과 함께 6승 2패 1세이브를 거둡니다.

하지만 봉중근은 언젠가부터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한 스피드가 더이상 나오지 않더니 2004년 신시내티로 트레이드되고 2005년 어깨 수술, 2006년엔 40인 로스터에서도 제외되며 마이너리그 더블A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어 한국 U턴설이 불거져 나오면서 결국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17세의 어린 나이로 야심차게 도전한 빅리거의 꿈을 9년만인 26세에 깨끗이 접은 것이었습니다.

1남3녀 중 막내인 자신을 택시 운전으로 뒷바라지한, 삶의 전부나 다름없는 아버지의 위중한 병세가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스스로 절감한 빅리그의 높은 벽과 자신의 한계, 그리고 처한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도 못지않게 결단을 재촉했습니다.

만인의 삶이 그렇듯이 봉중근과 비슷한 길을 간 선수는 숱했습니다. 몇 년 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뛰었던 이상훈도 그렇습니다.

한국에 이어 일본 주니치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그는 리그 우승을 하던 날 메이저리그 진출을 전격 선언했습니다. 주니치에 남았더라면 더 좋은 대우를 받았을 것이 확실했지만 미련없이 태평양을 건넜습니다. 보스턴에서 별 활약을 못하고 방출되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한계에 도달했다”며 5억원의 연봉을 포기하고 돌연 은퇴를 해버렸습니다. 지금은 록커로 변신했습니다. 그의 별명은 ‘야생마’였습니다. 그야말로 꿈을 찾아 거친 들판을 질주하는 야생마의 삶, 그것입니다.

한국 프로야구의 방랑자들도 글러브 하나, 방망이 하나 달랑 메고 미국에 왔습니다. 2006년 이미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의 최향남 (당시 35세)과 최익성(33세)이었습니다.

해태와 LG, 기아에서 투수로 활약했던 최향남은 다년간의 준비 끝에 클리블랜드와 연봉 10만 달러에 계약하고 트리플 A서 뛰었습니다. 영어가 서툴러 더 던질 수 있겠느냐는 코치의 물음에 “노 파워”라고 대답한 게 “노 프라블럼”으로 와전돼 교체가 늦어져 난타를 당하고 말았다는 해프닝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한 보람도 없이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지 못하고 이듬해 롯데로 돌아왔습니다.

10년간의 1군 생활 동안 한국의 8개팀 중 무려 6개팀을 옮겨다닌 최익성도 2006년 3월 사고무친의 LA로 와 ‘나 홀로’ 훈련을 하면서 팀을 찾았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팀에서 트레이너를 권유했지만 사양했다”면서 “아직 힘이 남아 있다. 마이너도, 멕시코도, 독립리그도, 어디든 좋다. 마지막으로 나의 한계를 시험하고 도전해 보고싶다. 그래서 ‘인제 정말 안되는구나’ 내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때 미련없이 포기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미국은 기회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한번 밟아보고 싶어하는 메이저리그. 수많은 비지땀과 눈물만으로도 안되고, 그래서 꿈의 높이뛰기 조차 허락하지 않는 무감의 벽,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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