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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동료인 박태준(경희대·5위), 서건우(한국체대), 이다빈(서울특별시청·이상 4위)이 모두 세계랭킹 5위 안에 드는 반면 김유진은 세계랭킹이 24위였기 때문이다. 여자 57㎏급에 출전한 16명 가운데 열두 번째다.
김유진은 파리올림픽에 오는 과정도 험난했다. 다른 대표 선수들이 국제대회 성적과 세계랭킹으로 자동 출전권을 받은 반면 김유진은 대한태권도협회 내부 선발전-대륙별 선발전 등을 거쳐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지난 3월 중국 타이안에서 열린 아시아 선발전 4강에서 줄리맘(캄보디아)을 꺾고 천신만고 끝에 체급별 상위 2명에게 주는 파리행 티켓을 받았다.
하지만 김유진은 세계랭킹이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 김유진이 이번 대회에서 이긴 선수들의 세계랭킹은 5위, 4위, 1위, 2위였다.
김유진은 첫 판인 16강에서 세계 5위이자 도쿄올림픽 동메달리스트 하티제 일귄(튀르키예)을 라운드 점수 2-0(7-5 8-2)로 잠재웠다. 이어 랭킹 4위인 한국계 캐나다 선수 스카일러 박도 역시 2-0(7-6 9-5)으로 제압했다.
4강에서 상대한 선수는 세계랭킹 1위 뤄쭝스(중국)였다. 뤄쭝스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우승자다.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대회도 모두 우승한 경력이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만 따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루는 이 체급 세계 최강자였다.
하지만 김유진은 세계 1위마저 접전 끝에 2-1(7-0 1-7 10-3)로 누르고 결승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켰다. 기세를 살려 결승에서 만난 세계 2위 나히드 키야니찬데(이란) 마저도 2-0(10-3 9-0) 완승을 거두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유진이 세계적인 강자를 꺾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 시킨 전략 덕분이었다. 183cm 장신인 김유진은 큰 키와 긴 다리를 이용해 앞발 싸움을 효과적으로 펼쳤다. 상대가 김유진의 넓은 발차기 반경을 의식하는 사이 기습적인 머리 공격으로 포인트를 따냈다.
4강에서 만난 뤄쭝스의 경우 2라운드에서 적극적인 발차기로 김유진의 철벽 수비를 뚫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3라운드에선 거리 싸움에 말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김유진이 좋은 신체조건과 뛰어난 실력을 갖췄음에도 세계 랭킹을 올리지 못한 이유는 부상 때문이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국제대회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김유진은 흔들리지 않았다. 세계랭킹은 낮아도 실력은 뒤처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의 원천은 엄청난 훈련량이었다. 결승 진출을 확정지은 뒤 김유진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관두고 싶을 정도로 정말 힘들게 훈련했다”고 그동안 과정을 털어놓았다. 정신적으로 힘든 순간이 찾아와도 그동안 흘린 땀방울을 생각하며 버텼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숫자가 아니라 실력이라는 것을 김유진이 잘 보여줬다. 먼 길을 돌고 돌아 힘겹게 올림픽 무대를 밟았지만 마지막에 기다린 것은 ‘해피엔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