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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 이데일리 SPN 송지훈 기자] '거미손' 이운재는 한국축구의 성장 과정과 함께 해 온 영웅이다.
1994미국월드컵을 시작으로 2002한일월드컵, 2006독일월드컵 등 세 차례의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섰고, 아시아 최고의 수문장 중 한 명으로 발돋움했다. 특히나 2002년에는 발군의 방어력을 자랑하며 한국의 4강 신화를 최후방에서 지원했다. '무적함대' 스페인과의 4강전 승부차기서 보여준 선방은 월드컵의 명장면으로 아직까지도 인구에 회자된다.
하지만 천하의 이운재도 '열흘 붉은 꽃이 없다(花無十日紅)'는 옛 어른들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기량이 일취월장한 후배 정성룡(성남 일화)에게 주전 골키퍼 자리를 내주며 2인자로 내려앉았다. 단 한 명만 그라운드에 나서는 포지션 특성상 '넘버2 골리'는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출전을 기대하기 힘든 자리다.
그간 언론에 비친 이운재는 열심히 노력하는 것 만큼이나 자존심이 센 선수였다. 그는 은퇴 시기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최고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면 언제든 미련 없이 물러날 것"이라는 답을 내놨다. 이 말 속에는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할 것'이라는 선수 자신의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운재 자신이 강조해온 바대로라면, 2인자로 역할이 강등된 이번 월드컵은 은퇴 무대가 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이운재가 허정무호에서 짊어져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답은 선수 자신이 내놨다. 이운재는 19일 밤(이하 한국시각) 열린 대표팀 비공개 훈련 직전에 기자회견에 참석해 "경기에 나서진 못하지만, 내가 해야 할 자리가 있다"며 담담하게 심경을 밝혔다.
이운재는 "나는 대표팀 맏형"이라면서 "후배들을 잘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네 번째로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은 베테랑으로서 후배 선수들이 큰 무대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무게중심 겸 길잡이 역할을 맡고 있다는 이야기다.
같은 맥락에서 이운재는 대표팀의 16강 도전 상황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지 말 것을 강조했다. 다가올 나이지리아전에서 무승부 이상의 성적을 거두면 16강에 오르는 상황에 대해 "가능성이 무척 높은 건 사실이지만, 결국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라 언급한 그는 "반드시 이겨야한다는 신념을 갖고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나이지리아 선수들 중 퇴장 선수도 있고 경고 누적 선수도 있어 결장자가 많지만, 그런 것에 현혹되면 곤란하다"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선수들은 자기 플레이에 충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이운재는 나이지리아전 선발 출장이 유력한 후배 정성룡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나이지리아의 중거리 슈팅은 시도 횟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위력적"이라 분석한 그는 "골키퍼로서 항상 준비를 해야하고, 또 날아오는 볼에 끝까지 집중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이운재는 남아공월드컵 무대에서 허정무호에 백의종군하며 '첫 월드컵 원정 16강'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국축구의 영욕과 함께 해 온 베테랑 골키퍼의 마지막 노력이 부디 긍정적인 결실로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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