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닷컴 제공]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프로야구 500만 관중 돌파 등 올해 한국야구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 한국야구의 성과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한국인 유일의 메이저리거 타자 추신수(26·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재발견이다. 올시즌 94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9리, 14홈런, 66타점의 불방망이를 휘두른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주목받는 신인선수로 성장했다. 2000년 혈혈단신으로 태평양을 건넌 뒤 8년 만에 진정한 ‘빅리거’의 꿈을 이룬 셈이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좁은 길을 마다하지 않은 추신수는 도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지난달 28일 귀국한 추신수를 15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개최된 ‘지스타2008’ 마구마구 팬사인회가 끝난 뒤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며칠전 발리로 뒤늦게 ‘허니문’을 다녀왔다면서요.
“2004년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지만 바빠서 신혼여행을 미뤄왔습니다. 한국에서 여행을 계획했는데 도와주시는 분이 있어서 쉽고 편하게 다녀왔습니다. ‘지각 신혼여행’인 셈인가요(웃음).”
-부인 하원미씨(25)는 어떻게 만났나요.
“2003년 시애틀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 우연히 만났습니다. 아내가 선약이 깨지면서 제 동생 친구에게 전화를 했고, 우연하게 합석했습니다. 한눈에 마음에 쏙 들더라고요. 제 성격이 직선적인데 하루만에 ‘사귀자’고 했습니다. 결혼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왔잖아요. 영어도 못하고 친구도 없고. 그런 상황에서도 결혼 다음해에 무빈(5)이 태어났어요. 그런데 아내는 한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더라고요. 한번은 원정을 간 뒤에 무빈이가 아팠는데 제가 걱정할까봐 혼자서 응급실을 다녀오더라고요. 대단한 사람입니다.”
-귀국후 어떻게 지냈는지.
“외부와는 연락을 끊고 ‘베스트 프렌드’들과 지냈어요. 오랫동안 못본 가족들과 회포를 풀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미국에서 ‘추추 트레인’으로 부르던데 무슨 의미입니까.
“이름 때문인 듯합니다. ‘추’ 발음이 열차가 달릴 때 나는 ‘추~추~’ 소리와 비슷해서 그런가 봐요. 성도 특이해서 기억을 잘해요.”
-미국에서도 인기를 실감합니까.
“제가 어떻다고 말하기는 그렇네요. 가족들과 밥먹으러 가거나 백화점에 갔을 때 알아 보는 정도입니다. ‘조금씩 정상의 길로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행동도, 몸가짐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런 것이 ‘공인’의 길이 아닐까 싶어요.”
-괄목상대라는 말처럼 눈부신 성적을 내기까지 무엇이 달라졌고 비결은 있나요.
“특별히 바뀌거나 그런 것은 없습니다. 타격폼을 조금 수정했을 뿐입니다. 타석에서 잡념을 없애고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일까요. 예전에는 ‘과연 내가 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면 올 시즌에는 ‘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임한 것이 후반기에 좋은 성적이 나온 것 같습니다.”
-안타는 많이 때리지만 홈런수가 적다는 얘기도 있고, 그때문에 트레이드 얘기도 나오는데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트레이드 된다고 해도 다른 팀에서 뛸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선수는 상품이기 때문에 잘하든, 못하든 항상 트레이드 될 수 있는 거죠. 그만큼 자신이 붙었다고나 할까요. 무엇보다도 내 상품가치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는데.
“화도 많이 났었죠. 그전에 WBC나 아시안게임 때도 국가대표로 뽑힐 수 있었는데 기회가 오지 않더라고요. 팀에서도 적극적으로 추진했었는데 안됐습니다. 이번 올림픽 때는 모든 것이 맞았는데 메이저리그 규정상 못 뛰었습니다. 그런 현실에 너무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올림픽에 갔다면 올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을까요. 두 가지를 다 잡을 수는 없잖아요.”
-내년 WBC에 참가하고 싶다고 했는데.
“소속팀에는 시즌 끝나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팀에서 ‘병역 면제가 있느냐’고 물어보기에 ‘없을 것 같다’고 답했더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확실한 답을 얻지는 못하고 그냥 ‘알았다’고만 하더군요.”
-지난해 9월 왼쪽 발꿈치 수술을 하고 올 6월 복귀했는데요.
“너무나 힘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수술후 메이저리그에 가서 정상적인 기량을 되찾을 수 있을까, 경쟁자들이 다들 뛰고 있는데 나만 이러고 있는 거 같더라고요. 기회가 주어질까, 이러다가 기회가 없어지면 어쩌나 밤잠을 설치기도 했고,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미국생활중 가장 힘들었던 때입니다.”
-미국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프로경력이 있는 일본선수들은 통역과 개인트레이너까지 붙여 좋은 조건으로 옵니다. 바로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는 상황이죠. 박찬호 선배와 김병현 선배는 예외이지만, 한국선수는 계약금을 받더라도 처음부터 마이너에서 시작합니다. 저의 경우로 볼 때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었습니다. 어렵게 메이저리그에 올라왔기에 그만큼 쉽게 내려가지도 않는 장점이 있습니다. 빅리그에서 생존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한마디로 도전이죠. 도전 자체를 거부하면 안됩니다.”
-내년 시즌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목표는.
“준비는 항상 매년 겨울 해오던 것과 같습니다. 홈런과 안타를 몇개 치겠다는 것보다 ‘올해보다 더 나은 해’를 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귀국전 45만달러짜리 단독주택을 구입했다면서요.
“이번에 무리를 했죠. 은행대출 받아서 애리조나주 피닉스 근처에 처음으로 집을 마련했습니다. 내년 시즌이 끝나야 연봉 조정신청 자격이 있지만 그전에 아주 조금은 오르겠죠. 내년에 잘하면 시즌 중반이라도 구단이 다년계약을 제시할 수도 있겠죠.”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마흔살까지 메이저리그에 서고 싶어요. 은퇴후 기회가 온다면 프로든, 중학교 감독이든 메이저리그식의 내 야구를 한번 해 보고 싶어요. 야구를 그만두면 뒷바라지로 고생한 아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