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3년 전 8월 중순, 뉴욕 메츠에서 뛰었던 구대성이 샌디에이고와 LA 원정을 와서 이런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앞으로 메이저리그에 오는 한국 선수들은 절대로 100만 달러 밑으로 받고는 오지말라.“
빅리그에 와서 반 년 뛰어봤더니 구단이 몸값 높은 선수들은 조금 못해도 충분한 출전 기회를 주는데 자신같이(45만 달러) 저연봉 선수들에게는 기회를 주지않아 헐값에는 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구대성은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산전수전을 다겪은 당시 37세의 베테랑이었죠. 그런 선수가 ‘가뭄에 콩 나듯’ 기회를 잡을까 말까했으니 그렇게 볼멘소리를 낼만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99년 겨울로 기억됩니다. 일본서 주니치 드래곤즈를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끈 선동렬은 보스턴 레드삭스 입단을 타진했다가 좌절됐습니다.
한국과 일본에서 1년에 30세이브 이상씩을 너끈히 올린 선동렬은 분명 탐나는 ‘물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스턴이 선동렬에게 한 최종 오퍼는 일단 스프링캠프에 참가한 뒤 정식 계약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올시즌 박찬호가 LA 다저스와 합의한 바로 그 논로스터 인바이티(Non-roster invitee)였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당시 선동렬의 나이가 37세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이미 은퇴를 선언했던 선동렬은 자존심이 상해 결국 보스턴의 제안을 거절하고 미국행도 포기했습니다.
구대성의 연봉 타령은 같은 팀에서 뛰었던 후배 서재응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실력은 좋은데 연봉이 낮아 마이너리그에서 썩고 있었다”는 예로 서재응을 들면서 ‘찬밥론’을 늘어놓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구대성이 일면만 보고 확대과장한 측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서재응은 루키였던 2003년 9승을 올리며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2004년 5승에 그치는 등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윌리 랜돌프 메츠 감독도 당시 서재응이 3연승의 눈부신 호투를 펼치고 있었는데도 붙박이를 확약하지 못하고 다만 “한경기 더 선발 기회를 주겠다”는 말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연봉이 적어서 등판 기회를 안준다”는 구대성의 말이 가당치 않다는 것을 오롯이 보여준 사례는 다저스 투수 옌시 브라조반도 있었습니다. 브라조반은 당시 부상을 당한 에릭 가니에를 대신해 불펜에서 승격돼 주전 소방수로 활약하며 21세이브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연봉은 구대성 보다 훨씬 적은 31만9500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그때까지 구대성은 32경기에 등판했는데 승-패-세이브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두 차례 세이브 기회가 있었으나 스스로 날리고 챙기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게 결코 아니었습니다.
단지 연봉이 적어서 팀이 기회를 주지않았다는 그의 주장은 핑계요 피해의식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당시 다저스에서 짐 트레이시 감독의 ‘금과옥조’였던 플래툰시스템 때문에 왼손 투수만 나오면 빠졌던 최희섭은 감독의 그런 처사가 섭섭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섭섭하기는요? 저보다 성적이 좋은 선수(올메도 사엔스)도 똑같은 대접을 받고 있는데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야지요.” 그리고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자꾸 그런 것 감독님한테 물어보지 마세요. 저만 곤란해져요”라고 오히려 기자를 입단속시켰습니다. 속마음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최희섭은 자기가 처한 현실 만큼은 제대로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남탓보다 ‘내탓이요’부터 해야 하늘도 돕는 게 우리네 삶의 운동 원리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질곡에서 탈출하는 해법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비단 구대성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되돌아보기는 커녕 국적과 인종 등 핑계거리부터 찾는 ‘네탓이요’는 바로 그 많던 선수들이 다시 태평양을 건너 돌아가고, 그래서 한두명의 선수로 명맥을 간신히 잇는 오늘 코리안 빅리거의 참담한 현실을 부른 한 원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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