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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人]“투어는 마약... 스페로 스페라!” 이준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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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기자I 2017.07.11 07:00:01

아마 시절 제이슨 데이와 호주 국가대표 동기 유망주, 프로 턴 이후 슬럼프로 우울증 겪기도..."자신감 다시 찾아가는 중 조만간 우승 꿈 이룰 것" 

그동안 한국, 중국, 아시아 등 여러 투어를 뛰었던 이준석은 "아무리 힘든 상황이어도 투어는 뛰고 싶고, 재미있다"고 했다. 사진=조원범 기자 

[이데일리 골프in 김세영 기자]“투어는 마약이다.”

딱 이 한 마디 때문이었다. ‘당신에게 투어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투어에서의 성적을 떠나 나름 소신을 갖고 프로 골퍼의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굴곡진 골프인생도 함축돼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나중에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호주 교포 이준석(29) 이야기다.

인터뷰를 하고 싶었던 이유 하나 더. 그의 팔뚝에서 작은 문신을 발견했다. 문구와 뜻을 물었다. ‘스페로 스페라’(spero spera). “살아 숨 쉬는 한 꿈은 이뤄진다는 의미의 라틴어”라고 했다. 아마추어 시절 제이슨 데이와 호주 국가대표로 선발됐던 이준석의 골프 인생은, 그러나 프로에 들어온 이후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팔뚝에 새긴 문구처럼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 2주 전 군산 대회 때 ‘투어는 마약’이라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프로 턴 이후 힘든 시기를 오랫동안 겪었다. 레슨도 받아보고,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유명하다는 프로는 다 찾아다닌 것 같다. 그래도 안 풀렸다. 그 와중에 주변에서 ‘좀 쉬어라. 쉬면서 골프를 잊고, 나중에 다시 시작을 해보라’는 얘기가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매번 Q스쿨에 가 있는 나를 발견했다. 성적은 좋지 않을망정 투어를 뛰는 건 너무 재미있었다. 때론 골프에 대한 흥미는 떨어지는데 쉬고 싶지는 않았다. 대회에는 나가고 싶었다. 사실 투어는 살벌한 전쟁터다. 스트레스도 심하게 받았다. 그런데도 투어를 계속 뛰었고, 앞으로도 계속 뛰고 싶다. 그러니 마약 아닌가.”

이준석은 2008년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Q스쿨을 1위로 통과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하지만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호주로 돌아갔다. 2011년 다시 Q스쿨을 거쳐 2012년 코리안 투어를 뛰었다. 그해 차이나 투어도 병행했다. 당시 이준석은 차이나 Q스쿨을 1위로 통과했다. 2위는 왕정훈이었다. 이준석은 이후 아시안 투어와 원아시아 투어에서도 활동했다. 투어 생활 10년 동안 일본만 빼고 아시아 쪽은 다 뛴 셈이다.

- 성적은 어땠나.

“작년과 재작년 아시안 투어에서 활동했다. 성적은 좋지 않았다. 시드 유지도 못했다. 아시안 투어가 Q스쿨 통과자한테는 어렵다. 유럽과의 공동 주최 대회에는 나갈 기회가 거의 없다. 순수 아시안 투어 대회는 상금 규모나 수가 적다. 시드 유지를 위해선 상금 순위 60위 안에 들어야 하는데 Q스쿨 통과자 중 그런 케이스는 몇 안 된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경험을 쌓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뛰었다.”

- 경험을 쌓는 것도 좋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힘들었을 텐데.

“다들 아시는 부분일 거다. 성적이 좋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정적인 수입이 없다. 솔직히 집안 형편이 원래부터 괜찮은 선수도 있지만 안 그런 선수도 많다. 나도 2013년 결혼을 한 후에는 독립체가 됐으니까 부모님께 손 벌리기도 힘들었다. 그나마 지난 2~3년 아시안 투어를 뛰면서 저축한 건 없어도 경비는 조달했다. 생활비나 이런 건 어머니께서 조금 도와주셨다. 어쩔 수 없었다.”

- 군산CC오픈에서 공동 4위에 오르는 등 최근 성적이 나쁘지 않다.

“꾸준한 플레이를 하고 있다.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군산 대회 때는 컨디션 관리를 잘못한 측면이 있었다. 첫날 공동 선두로 나서는 등 샷 감각도 좋았다. 그런데 대회 중 목이 아프고 열도 많이 났다. 하지만 대회 기간이라 도핑 때문에 약도 못 먹었다. 잠도 제대로 못자는 등 컨디션 조절을 못했다. 대회 끝나고 병원에 가보니 후두염이라고 하더라. 그래도 이게 다 올해부터 바쁘게 대회를 다니다 보니까 그런 것 같다. 예전에는 이렇게 바빴던 적이 없었다. 앞으로 대회가 더 남았으니 몸 관리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할 듯하다.”

- 프로 골퍼로서의 삶과 가정과의 균형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려고 하나.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아내와 연애를 오래 했다. 한 6년 반 정도 교제했다. 그때부터 봐서 그런지 아내가 내 생활에 대해 이해를 잘 해 준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은 후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정상적인 직업이 아니지 않나. 회사원은 일 끝나고 아내 일을 도와줄 수 있지만 프로 골퍼는 컨디션 관리가 최우선이다. 나 혼자 따로 자는 상황도 있는 등 힘들었다. 그래도 아내가 이해를 해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안 그랬으면 스트레스 많이 받았을 거고, 운동 말고 다른 일을 했을 수도 있다. 처가 쪽에서도 도움을 많이 줬다. 그게 큰 힘이 된다.”

이준석은 10년 전 아내와 처음 만났다. 당시 호주로 어학연수를 왔던 아내는 도착 첫날 길을 잃었다. 이 때 이준석이 도움을 줬고, 그 인연이 결혼까지 이어지게 됐다. 2013년 결혼했다. 2014년 첫째, 작년 11월 둘째를 낳았다. 현재 이준석은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드림골프 연습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아내와 아이들은 대구에서 지내고 있다. 그는 “대회 직후 대구에 가서 아내와 아이들을 하루 만나고 훈련을 위해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다”며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게 힘들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 결혼을 일찍 한 것 같은데.

“계기가 있다. 사실 결혼 준비가 안 돼 있던 상태였는데 2013년에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 중이셨다. 아버지의 소원이 내 결혼과 손자 보는 거였다. 그거라도 이뤄드리고 싶어서 준비는 안 됐지만 결혼을 하게 됐다. 아버지가 내 결혼도 보고, 그 다음 해에 손자도 봤다. 그리고 그 해 말 돌아가셨다. 골프로 이룬 건 없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작은 소망이라도 이뤄드렸으니 나름 뿌듯하다. 지금까지 계셨으면 내가 잘 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 골프를 시작한 계기는 뭔가. 어린 시절부터 운동에 소질이 있었나.

“골프 전에 쇼트 트랙 선수를 했다. 그런데 상비군으로 넘어가야 할 시점에 훈련이 무섭더라. 처음 스케이트를 탈 때는 즐겼는데 나중에는 그게 아니었다. 너무 스파르타식이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들었다. 난 재미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1999년에 그만 뒀다. 마침 당시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취미로 골프를 하고 계셨는데 아버지가 골프를 권했다. 잠깐 실내 연습장에서 재미로 혼자 했다. 당시 박세리 붐도 불었다. 그러다가 골프에 전념하게 됐다. 운동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초등 1학년 때는 육상부, 3학년 때 스케이트, 5학년 때는 야구학교도 들어가는 등 이런저런 스포츠를 좋아했다.”

호주 유학 시절 제이슨 데이(맨 오른쪽)와 함게 한 이준석(맨 왼쪽). 사진=이준석 제공 

- 14세 때 호주로 유학을 갔다. 계기는.

“골프만 원했다면 한국에서 했으면 됐다. 그러나 부모님은 공부도 시키고 싶어 하셨다. 외국은 그런 시스템이 잘 돼 있지 않나. 영어도 배울 겸 유학을 가게 됐다.”

- 그렇게 간 호주 유학은 재미있었나.

“처음에는 호주가 천국 같았다. 원하는 시간대에 아무 때나 골프를 해도 되고, 잔디도 좋았다. 한국은 워낙 제약이 많지 않나. 비용도 많이 들고…. 거긴 골프채만 있으면 골프백 메고 나가도 된다. 운동이 1순위였지만 공부도 열심히 했다.”

- 대부분의 교포 선수들이 영어 이름을 쓰는데, 이준석이라는 한국 이름을 쓰고 있다. 영어 이름은 없었나.

“원래 주니어 때는 케빈이라는 이름을 썼다. 하지만 내가 그 나라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지 않나. 호주 국가대표 뽑힌 상황에서 영어 이름이 필요해서 지은 게 케빈이었다. 나중에 영주권을 따면서 개명을 해야 했지만 그래도 한국 이름을 버리긴 싫었다. 호주 사람들은 케빈으로 알고 있다. 여권 이름은 이준석이다.”

- 호주 국가대표는 언제 발탁됐나.

“17세 때인 2005년도다. 그런데 국가대표로 활동은 못했다. 국적이 한국이어서였다. 호주 정부에서 시민권 취득을 도와주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면서 결국은 활동을 못했다.

- 주니어 시절 기억에 남는 우승은.

“2005년 미국 세계 주니어 옵티미스트 인터내셔널 우승이다.”

이준석은 “타이거 우즈가 6년 연속 우승한 대회다. 필 미켈슨, 어니 엘스, 레티프 구센 등도 역대 우승자”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우승”이라고 했다.

- 그런데 프로에 와서는 잘 풀리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나.

“호주에서 다시 한국에 왔을 때 적응을 제대로 못했다. 코스 환경이 너무 달랐다. OB(아웃오브바운스) 구역도 많고…. 어린 나이게 그런 걸 금방 캐치하고 대처하는 게 미흡했다. 원래 공격적이던 플레이 스타일도 바뀌었다. 경기가 안 풀리다 보니 멘털이 흔들리고, 테크닉도 변형됐다. 그러면서 슬럼프에 빠졌다. 프로 턴 직후 드라이버 입스가 와서 한동안 고생했다. 그 탓에 우울증과 불면증도 겪었다.”

- 제이슨 데이와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

“호주 유학 때 처음 들어간 학교가 퀸즈랜드에 있는 힐스 인터내셔널이라는 곳이었다. 당시 이웃 학교가 문을 닫는 바람에 그쪽 학생들이 우리 학교로 왔다. 그 때 넘어온 학생 중 한 명이 제이슨 데이였다. 같이 연습도 많이 했다. 서로 라이벌 의식도 있었다. 주 대표로 같이 대회도 많이 나갔다. 내가 처음에는 좀 더 잘 했던 것 같은데 제이슨 실력이 빨리 빨리 늘었다.”(하하)

- 제이슨 데이 어머니도 필리핀계다. 둘 다 동양인의 피가 흐른다는 동질감 덕에 친하게 지냈나.

“아무래도 그 당시에 이 친구 집도 어려웠다. 골프가 좋은 운동인 이유 중 하나가 부자건 아니건 한 조에서 경기를 하면서 같은 선수로서 교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거다. 같이 플레이를 자주 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또한 제이슨의 경우 어머니가 주로 케어를 했다. 나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매 대회 따라 다니셨다. 같은 동양인이어서 그런지 우리 어머니와 제이슨 어머니가 서로 많은 얘기를 나눴다.”

- 현재 미국에서 뛰고 있는 제이슨 데이의 모습을 보면 부럽지 않나.

“제이슨이 미국으로 넘어갈 때 나에게도 ‘너도 미국에 가면 충분히 되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그때 나에게도 미국 대학 쪽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들어왔다. 그런데 시민권을 따야 했던 시기여서 거기에 발목이 잡혔다. ‘당시 미국으로 넘어갔으면 충분히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솔직히 미국 가서 잘 됐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가족을 더 고생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받아들인다. 한국에서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니 만족한다.”

이준석은 "자신의 꿈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사진=조원범 기자 

- 손목에 있는 문신은 어떤 계기로 한 건가.

“작년에 태국 대회를 나갔다가 잘 안 풀리더라. 외국에서 경기가 안 풀리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더 들었다. 답답했다. 뭔가 의미도 있고, 새로운 걸 하고 싶었다. 리디아 고나 박성현도 그들만의 의미 있는 타투가 있지 않나. 나도 그 생각이 들어서 했다. ‘스페로 스페라’라는 문구와 뜻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내가 골프를 하는 동안 나의 꿈을 이루겠다는 신념을 새긴 거다. 매일 문신을 보면서 꿈을 이뤄보자고 마음을 먹는다. 그런데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어머니나 아내 모두 보수적이다. 특히 어머니가 놀라셨다. ‘괜히 골프를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탄식하더라. 그러나 타투를 하고 나서 골프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리디아 고의 오른쪽 손목엔 ‘Ⅳ-ⅩⅩⅦ-ⅩⅣ’ 로마자 문신이 새겨져 있다. 2014년 4월 27일을 뜻하는 ‘4-27-14’다. 리디아 고가 LPGA 투어 정식 멤버로 투어 첫 우승한 날짜다. 박성현의 왼쪽 손목에는 ‘Lucete’(루케테)라고 적혀 있다. 라틴어로 ‘밝게 빛나라’는 뜻이다.

- 그토록 이루고 싶은 꿈은 뭔가.

“솔직히 전에는 미국 진출이었다. 다른 선수들처럼 메이저 대회에도 나가고 우승도 하고 싶었다. 이제는 현실적으로 생각한다. 일단 ‘코리안 투어의 별’이 되는 것이다. 상금왕이나 대상을 차지하는 게 목표다. 그러다 보면 외국 진출 기회도 생길 거고, 또 다른 꿈도 생기지 않겠나.”

사람마다 ‘감’(感)이라는 게 있다. 한 분야에 오래 매진하다 보면 자신의 목표에 근접했을 때의 느낌, 흔히 ‘촉’이 올 때가 있다. 그에게 “이제 우승할 때가 됐다고 보느냐”고 질문했다. 그는 주저 없이 “예스”라고 답했다.

“이건 나도 몰랐던 부분인데 대회에 나갔을 때 내가 만족을 못하는 스코어인데도 등수는 상위권에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1등과 큰 차이가 없는 거다. 약점만 조금 보완하면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예전에는 정반대였다. 파이널 그룹에 가면 스스로 무너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없다. 멘털이 나아졌다는 뜻이다. 입스로 감을 잃었던 드라이버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우승을 하려면 흔히 3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얘기한다. 지금 나는 2.5박자 정도인 것 같다. 마지막 0.5박자를 맞춰 넣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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