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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수학 영재, 골프채 들고 US오픈 품었다

김인오 기자I 2015.07.14 07:40:47
전인지(사진=AFPBBNews)
[이데일리 김인오 기자] 수학을 잘하는 ‘소녀’가 있었다. 경시대회만 나가면 상장을 손에 쥐고 집으로 달려왔다. 학교에서는 수학 재능자로 인정해 영재수업을 시켰다. 그 소녀의 인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연히 만져본 요상한 막대기(?)가 완전히 바꿔놓았다. 바로 골프채였다.

처음에는 볼을 맞히기도 쉽지 않았다. 소녀는 오기가 발동했다. 고개를 좌우로 젓고 있는 아버지의 표정이 왠지 싫었다.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쉬지 않고 5시간을 보냈다.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가 되자 드디어 볼이 맞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딸의 근성을 보고 골프를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했다. 힘겨운 여정의 시작이다.

학교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교감 선생님은 “공부에 더 소질이 있다”며 아버지를 만류했다. 수업을 빼주지도 않고 학교에만 붙들어놨다. 아버지는 골프 환경이 좋은 제주도로 전학을 보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는 지원이 탄탄한 전남 보성의 득량 중학교를 선택했다. 고등학교는 골프특성화 학교인 함평골프고등학교로 옮겼다. 신지애(27)가 졸업한 곳이다.

‘맹부삼천지교’. 아버지의 지극 정성에 소녀는 사춘기를 모르고 자랐고,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 고등학교 1학년 때 국가대표로 뽑히는 등 엘리트코스를 모두 밟았다. 그리고 골프를 시작한 지 9년 만인 2012년, 꿈꾸던 프로 무대에 진출했다.

프로에서도 엘리트는 엘리트였다. 2012년 드림투어 상금랭킹 2위로 시드전을 거치지 않고 정규투어 티켓을 획득했다. 2013년 5월 두산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장하나(23·비씨카드)와 접전을 벌인 끝에 준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은 아니지만 ‘전. 인. 지.’라는 이름 석 자를 알리기에는 차고도 남았다.

결실은 한 달 후 열린 메이저대회 한국여자오픈에서 맺혔다. 쟁쟁한 선배들을 모두 따돌리고 대망의 첫 우승을 일궈냈다. 오로지 골프 선수로 키워야겠다는 일념으로 10년 넘게 고생한 아버지 전종진(56) 씨는 시상식에서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아낸 전인지를 보고 따라 울었다. 고생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지난해에는 3승을 쏘았다. 시즌 상금도 6억원을 넘겼다. 항상 옅은 미소만 지었던 전인지도 모처럼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주름진 얼굴의 아버지가 어느새 근사한 노신사로 변했기 때문이다. 당시 전인지는 “프로 골퍼가 되려면 1년에 1억원 정도 든다. 1년에 산 하나씩 팔았을 것이다. 이제 아버지를 위해 살겠다”며 지극한 효심을 드러냈다.

올해는 더 대단하다. 획득한 상금이 말해준다. 지난 6월 에쓰오일 챔피언스 인비테이셔널 우승으로 시즌 3승을 달성했다. 아직 절반의 대회가 남았지만 상금 5억원(5억5924만원) 고지를 넘어섰다. 지난 5월 일본 메이저대회 살롱파스컵을 제패해 2400만엔(약 2억1000만원)을 획득했다. 13일(한국시간) 끝난 제70회 US여자오픈 우승으로 81만달러(약 9억2000만원)을 받았다. 벌써 16억원을 넘게 벌었다.

한국과 미국, 일본 투어를 제패한 두 번째 한국 선수로 2008년 신지애 이후 7년 만이다. 3대 투어 메이저대회로 따지면 2006년 장정(35)에 이어 역시 전인지가 두 번째다.

US여자오픈 우승으로 전인지는 LPGA 투어 출전권을 따냈다. 아직 ‘때’를 밝히는 것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하지만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해외 진출은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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