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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의 은퇴는 한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한국 야구를 가장 화려하게 빛냈던 92학번 세대와의 이별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조성민을 시작으로 임선동 염종석 손경수 그리고 박찬호, 정민철 까지… 한국 야구의 92학번은 사상 가장 빛이 나는 세대였다. 그들은 한국 야구가 지금의 인기와 입지를 만들어내는데 가장 큰 공로자였다.
빛이 너무 강하면 어둠도 그만큼 깊어진다고 했던가. 한국 야구의 92학번은 가장 쓸쓸한 뒷모습을 남긴 세대이기도 하다. 롱런을 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선수 생활을 짧게 마감하거나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다. 부상의 덫이 그들의 발목을 잡은 가장 큰 적이었다.
전 LG 코치 최원호도 92학번이다. 동기들 만큼 화려하진 않았지만 그 역시 ‘명품 커브’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투수다. 최원호의 이름을 떼어놓고는 한국 야구 커브의 계보를 말할 수 없다.
오래 전 그와 ‘커브’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커브를 잘 던질 수 있는 비결이 궁금했다.그는 의외의 답을 내 놓았다. “여러가지 있겠지만... 워낙 어려서부터 던져서 그런 것 같다.”
최원호가 커브를 던지기 시작한 건 리틀야구 시절이었다. 92학번들이 한참 야구 선수로 꿈을 키우고 있던 시절, 리틀야구엔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선수들에게 커브를 던지는 것이 허용됐던 것이다.
최원호는 “원래 우리 리틀야구는 변화구를 못 던지게 했다. 그런데 국제대회서 대표팀이 변화구 못쳐서 망신을 당했다. 곧바로 규정이 바뀌었다. 딱 우리가 투수 시작할 무렵이었다. 당연히 모든 감독들이 투수들에게 변화구만 원했다. 애들이 못 치니까. 손가락 하나는 직구,두개면 커브 사인이었는데 하나는 거의 본 기억이 없다”고 설명했다.
공을 던지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체를 타고난 것과 반대 방향으로 쓰는 것이다. 많이 던지면 탈이 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변화구는 그런 팔의 동작을 더욱 비트는 작업이 동반된다. 모두에게 통용되는 법칙은 아니지만 변화구는 늘 부상 위험을 높이는 존재로 의심받고 있다.
초등학생의 몸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았을까. 아직 몸의 밸런스가 잡히지 않은 나이. 최원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때의 무리한 팔 동작이 어린 에이스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진 않았을지, 슬몃 마음이 아파왔다.
그때 채 영글지도 않은 팔로줄창 변화구를 던져야 했던 선수들이 바로 우리의 92학번 들이다. 또래는 물론 위.아래로 그들보다 야구 잘하는 아이들은 찾기 힘들었을 터. 가장 많은 경기에 나서 가장 많은 공, 특히 변화구를 던져야 했을 것이다.
너무나 빼어났던 그들이기에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고 원했던 건 아닐까. 세상이 그들의 재능에 너무 무거운 짐을 안겨줬던 건 아닐까. 떠나는 뒷 모습을 보고서야 미안한 마음을 처음 전해본다.